책 관련 첫 포스팅인데 뭘 제일 먼저 소개할까 고민하다 차선책이 최선책이 될 수 있겠다 싶어 고른 책은...
추억 돋는 고전 서적, 타미야의 '정경 가이드 북(情景ガイドブック | Guide Book of Diorama Techniques)'이다.
얇아서 골랐다.
책 제목은 다분히 고 '쉐퍼드 페인 Sheperd Paine' 선생의 How to Build Dioramas를 의식한 듯.
대놓고 제목에 오마주한 책은 하비 재팬의 How to Build Gundam 1, 2가 있긴 하다.
이분이 본인 책에 담은 모형과 디오라마에 대한 썰을 타미야 제품으로 각색해서 그런지 텍스트와 예시로 나오는 작품들 모두 압축적이고 밀도 있게 기획한 좋은 책이다.
잘 편집한 치라시나 일본 잡지 특유의 여백이 '거의없는' 미(美)로 48페이지를 알찬 정보로 꽉 채웠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흑백 페이지.
이 흑백 페이지들만 다시 컬러로 복각해주면 한 권 더 사고 싶을 정도로 지금 시각으로 봐도 볼게 많아 눈이 즐겁다.
Over Run (기습, 58 x 38 cm)
표지를 장식한 디오라마는 타미야 본사에 가면 볼 수 있다는 쉐퍼드 페인 선생 작품이다.
(이 책에는 프랑소와 벨린덴의 작품도 실려있다.)
디오라마 스토리 텔링의 대가 답게 이 작품은 사방에서 감상할 수 있는 개방된 구도인데, 책의 앞뒤 표지 사진도 작가의 이러한 의도를 잘 살렸다.
이 책 안에 실린 작품들 대부분 본사에 전시되어 있어서 견학 다녀왔다는 유튜브 동영상이나 블로그를 잘 찾아보면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언젠간 꼭 식구랑 같이 가고 싶다.)
한국타미야 주관으로 공식적으로 한국을 다녀간 슌사쿠 田宮 俊作 회장님 사진은 모형 관련 커뮤니티나 직접 만나서 사인받았다는 개인 블로그 글에도 종종 보일 정도로 많이 알려졌지만, 지금의 세계적인 브랜드로 확장 가능했던 것은 친동생 타미야 마사오 田宮 督夫씨의 디자인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저 트윈 스타 로고를 만든 디자이너! 당사자로 타미야에서 30년 넘게 디자인 관련 전반적인 업무를 맡았다고 하니 타미야 하면 떠오르는 시각적 문법 대부분을 이분이 만드신 듯.
책 표지뿐 아니라 안에도 쉐퍼드 페인이 타미야 제품으로 만든 본인 작품에 대한 글과 사진이 실려있다.
명저, How to Build Dioramas는 워낙 시공초월 가치 이론을 집약한 책이라 이분 철학에 입덕 하고 모형 쪽에 발 담그신 분들 여럿 먹여 살리지 않았을까?
일본의 대표 모형잡지 하비 재팬에서 1981년에 처음 일본어 번역본을 출간했고 2007년에 신기원사 라는 출판사에서도 번역본을 내놨다.
국내에도 KALMBACH BOOKS의 영문판보다 하비 재팬에서 나온 번역본을 더 많이 유통한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건 2007년에 나온 '신기원사'의 개정 신간 감수를 맡은 우메모토 히로시 梅本 弘 (이치무라 히로시 市村 弘의 필명)가 경쟁 잡지 모델 그래픽스를 편집하는 외주 제작회사, 아트박스(ARTBOX Co.,Ltd.)의 현재 대표이자 편집자라는 거.
How to Build Dioramas가 워낙 유명해서 쉐퍼드 페인 선생의 Modeling Tanks and Military Vehicles라는 책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는데, 하비 재팬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위의 우메모토 히로시 (팬네임으로 본명은 이치무라 히로시 市村弘)가 1984년, 역시 HJ출신 영업맨이 독립해서 세운 회사 아트박스를 통해 모데구라(모델 그래픽스)를 창간하고 이듬해 1985년 7월에는 쉐퍼드 페인의 전차 만드는 법(シェパードペインの戦車の作り方)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을 내놓은 이력도 있다.
'넌 계획이 다 있(었)구나?'
팬심(덕력)을 증명받고 싶었나?
쉐퍼드 페인 씨는 중동물 관련 작품도 많이 만들었다.
슬로프의 완만한 경사로 정점에 걸려있는 메르카바 전차의 1번 로드휠의 높이만 조절해주고(이 작업 만으로 시각적 리듬감이 생긴다!) 평지였다면 어색했을 최대한 낮춘 주포 높이에 설득력과 이유를 제공해준다.
사진에는 안 보이는데 전차 안에서 후방 도어를 열고 맨 뒤의 부상병에게 손짓하는 인형도 있다.
키파를 쓰고 슬로프 측면으로 올라가고 있는 병사는 두 공간을 이어주면서 전체 구도에서 쉼표 같은 역할을 한다.
드럼통도 하나는 서있고 다른 하나는 뉘어있어 정적인 디오라마에 리듬감을 살린다.
심지어 하나는 뚜껑을 땄다.
이렇게 각 보병마다의 사연?을 상상하다 보면 오른쪽에 있는 강아지를 발견하고 시선을 다시 무대로 되돌린다.
사이트로 말하면 이탈률을 낮추는 것이고, 마트로 말하자면 PB상품으로 손이 가도록 눈높이 왼쪽 매대에 진열하는 것과 같은 논리랄까.
그리고 이 강아지에는 숨은? 사연이 있는데...
타미야 본사 역사관에 전시하고 있다는 이 작품엔 위 흑백사진에 보이는 무전병 인형이 있다!
아쉽게 못 가봤으나 견학 다녀온 분들 포스팅이나 유튜브 동영상을 보니까 확실히 저 인형이 엎드리고 있는 상태로 디오라마를 진열하고있다.
별거 아닌 궁금증을 인터넷 덕분에 해결 한 샘.
(시신이라 컬러사진에서 뺐을지도...)
이걸 몰랐을리가... 싶은, AM에서 타미야 MM 50주년 특집호를 위해 본사 역사관에서 촬영 중 처음(?) 발견했다는 인형.
의도가 뭐였을지는 작가님이 고인이셔서 여쭤볼 수 없지만, 타미야에서도 이걸 모르고 있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 이라는 생각은 잠시!, 사실은 전쟁 피해자로 개 앞에 누워있던 사체 인형을 오해하기 쉽게 누군가 건물 안쪽에 옮겨 세워놓은 것.
위 사진은 아머모델링(AM) 2018년 10월호 Vol. 228이고, 여성 인형의 정체는 이곳 포스팅에 요 사진이 잘 알려준다.
조종수 해치 옆에 앉아서 콜라마실 시간에 플레이 보이잡지 브로마이드에 집중하고 있는 운전병에 제일 먼저 눈이 간다.
(책에 열중하느라 캔 뚜껑도 그대로다.)
박스를 보아하니 전우들에게 콜라를 돌리고 탱크 옆에서 홀로 마시고 있는 병사.
한가하게 담배(마리아놔?)를 돌려 피고 있는 두 병사 위로 시선을 모아주는 안테나 위에 '브라 Ja'.
(참고로 '브라 Ja'는인도네시아어로 공부한다는 뜻... 이다. )
캔콜라만으로 네 병사 각각 다른 상황을 연출하니까 리듬감이 살아난다.
정글모(부니 햇, Boonie Hat)를 쓰고 있는 병사의 우람한 왼쪽 어깨에는 문신도 보인다!
정적인 사진 몇 컷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경 쓰이게 하는 작가의 기획력(스토리 텔링)은 지금 봐도 대단하다.
요란하지 않아도 충실하게 재현한 탱크 디테일 업뿐 아니라 베트남 특유의 붉은 토양을 잘 살린 색칠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작품.
마치 이타노 서커스의 애니메이션이 관객에게 관성마저 느끼게 하듯 정적인 디오라마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에 힘이 있다.
아버지 인기척을 느꼈을 땐 이미 늦었다.
이 디오라마브라&마이드를 뚫어 저라 보고 있는 나를 보고 계신 것.
(나도 좀 보자꾸나?)
금붕어 주의보의 왕 땀이 흐르는 연출 장면처럼 긴장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억지로 옛 기억을 떠올려보니 비슷한 상황이 한 번 더 있었는데 그건 공중파 방송을 보고 있을 때였다.
아마도 영화 평론가 고 정영일 선생님이 소개(방송 예고)했을지 모를 마지막 황제를 보고 있는데 (심지어 내가 틀어놓은 것도 아니었다) 푸이가 궁녀랑 노는 장면에서 갑자기 TV를 꺼버리시는 뻘쭘함.
(아버지, 그러시면 안 봐도 보신거...)
뭐 암튼 저 병사가 보고 있는 브로마이드의 원본은 어떤 책인지, 사진 속 모델은 누군지 궁...
인터넷에 기록이 있을까 싶어 검색해 봤는데... 못 찾음.
실물이 원본 표지까지 재현해 놨다면?
(타미야 본사 전시장을 방문할 이유가 생겼다.)
미술 교과서에서나 접했던 유화물감은 먼 세상 얘기였던 내게 '신한 유화물감'을 사게 만드신 분.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내려놓고 좀 더 진입장벽이 낮은 제품을 만들어주면 프라모델이 더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고 이로 인해 미술교육에도 좋다는 게 내 지론이다.
벨린덴 웨이 같은 이분 책들은 모형점을 더 전문적인 매장으로 보이게 하는 마법 같은 소품이었다.
벨기에 모델러로 회사는 미국으로 옮겼다고 들었는데 아무튼 지금은 폐업.
회사가 어려워진 게 카피품 때문이라는 썰도 있는데 경쟁사 대비 품질 저하나 인간관계 얘기는 그렇다 쳐도 30년 넘게 업계에 끼친 영향을 봐서라도 조금만 더 시장 상황에 맞는 제품을 만들었다면 '미그 히메네 Mig Jimenez'의 AMMO나 발레호Vallejo 같은 회사가 가는 길을 걷지 않았을까 싶어 살짝 아쉽다.
이 책 말고도 벨린덴 작품을 따로 모아서 단행본으로 타미야에서 출간했고 국내에는 아카데미가 카피해서 출간 했...
아카데미과학에서 아카콘 수상작과 이 책 내용을 짬뽕으로 편집한 책이 있는데, 기억나는 건 쉐퍼드 페인의 'AID STATION 야전 병원'을 벨린덴 작품이라고 오타 낸 것.
원본을 오려 붙이다 너무 많아서 혼동했나 보다.
벨린덴의 작품은 타미야 뉴스라는 간행물 포함 타미야에서 내놓은 여러 출판물을 통해 전 세계에 그의 작품을 알렸다.
그리고 국내 여러 모형 회사의 개발비를 아껴주기도 했고.
판권에 대한 인식이 바뀐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울 일들이 많았던 옛날이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다.
외국 모형 메이커라고 카피의 역사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거다.
벨린덴의 인형 제품만 하더라도 영국의 에어픽스Airfix 제품의 라이플을 이용한 복제로 구설수에 오른 이력이 있다.
오히려 카피로 번 자본력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었고 지금은 지우고 싶은 과거 흔적을 없애고 독자개발에 힘쓰는 동기부여도 되니 지금의 노력에 응원할 뿐.
이런 '소프트 스킨 차량 Soft-skinned vehicle'이 너무 좋다.
라이플에 멜빵끈만 추가해도 와~~~ 하던 시절이지만, 애프터 마켓에서 만드는 신기한 별매품이 넘치는 요즘보다 만족감은 더 높은 걸 보면 저 시절 자료는 이성보다는 감성의 영역이다.
기본 조립만으로도 최적의 완성도를 구현하는 요즘 기술을 추억 때문에 무시할 필요는 없기도 하고 저 당시와 요즘 모형 환경 중 선택하라면 주저 없이 지금이 더 좋다.
언제 봐도 멋짐.
지금 봐도 너무 멋있다.
F-14 만 한정해서 기억에 남는 완성작을 꼽아보라면,
이 책이 좋은 것은 보고만 있어도 이미 마음속으로 모형(디오라마)을 만들고 있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는 것!
물론 자사 제품 많이 팔고 책도 팔려고 기획했을 책이겠으나 사진만 봐도 나도 이렇게 만들고 싶다는 지향점을 구제적으로, 왠지 나도 만들 수 있다는 용기를 줘서 좋다.
한편으론 이런 콘텐츠를 자사 아이템만으로도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구색을 갖췄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그리고 디오라마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형의 힘을 알게 된다.
찻잔 속에 담긴 저 제품(나보다 형님인 1974년 발매 당시 가격 250엔!)이 나의 첫 타미야 제품인 이유.
이 사진 속 아기자기한 작품에 영업당했다.
제품의 박스아트는 우에다 신 화백께서 그려주심.
친절한 설명 안에 모래주머니는 자사 제품을 썼다는 깨알 같은 홍보.
예나 지금이나 출력물의 편집, 일러스트의 라인 퀄리티는 영원한 클라스를 보여준다.
일 잘 알 타미야.
발상이 재미있다.
인화한 사진으로 모형 속 인쇄물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예시.
지금이야 집에서 출력하면 쉽게 해결되나 저땐 저 방법이 최선이었을 듯.
현상, 인화라는 단어가 생소해진 요즘이다.
디지털카메라를 지나 스마트폰의 세상에서 바라보는 옛날 필카가 제시하는 해법.
프린터, 아니 컴퓨터도 흔치 않던 시절 인쇄물을 축소해서 모형에 쓰고 싶다면 이렇게 최첨단? 번거로움이 필요했다.
이런 시장을 읽은 제조사는 2차 대전 선전 포스터나 잡지 표지 같은 소품을 축소 인쇄한 별매품이나 제품 박스 인쇄 등으로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옛날이라고 해서 모형 만드는 과정이 크게 다를 건 없다.
최근 유행하는 재료는 마치 연예인 화장품만큼 종류와 브랜드도 다양해졌다.
오히려 너무 많은 색칠 도구와 물감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끔 이렇게 옛날 방법으로 만드는 것도 재미있을 듯.
예나 지금이나 실물에 가까운 모형 연출이라는 대전제는 변함없다.
타미야 설명서와 박스아트로도 유명한 우에다 신 上田 信 화백의 삽화!
이분 여캐도 잘 그리시는데 미국 만화 스타일의 매력이 넘친다.
요즘 유튜브도 하심.
가서 이분의 귀한 그림 수업받으러 가자.
위에 언급한 아카데미과학에서 재편집(카피)한 책에는 우에다 신 선생의 일러스트를 국내 작가 그림으로 교체했다.
우에다 신 선생 따님 부부가 운영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종종 유튜브 촬영하시는데, 딸바보는 동서고금을 초월한 아빠들의 본능(의무?)인가 보다.
모형이라고 밀리터리만 만들면 재미없기도 하고 또 캐릭터물은 비교적 가격이 비싸다.
일반인 시리즈를 1/35로 많이 출시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이를테면 아카데미과학 포니 1/35와 이에 어울리는 피겨 같은 거 만들어 주면 좋은데.
스토리 텔링의 중심인 피겨에 약한 아카데미가 많이 아쉽지만, 최근 한정 발매로 기획한 독수리 오형제 수나 피겨나 포니의 레트로 걸을 보면 기획력과 실행력에 한 줄기 희망이 보인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팬T 페T시 라는 정도...?)
레진으로 한정 발매한 수나 인형의 경우 헬멧 바이저만큼은 무려 인젝션 금형으로 팠어서 '오... 이게 한 번으로 끝날게 아니구나'라는 당연한 예상을 했고 2번째 모델로 적중했다.
일본에서도 아카제 수나인형은 옥션에 나오면 무조건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 제품 개조해서 만든 바닷가 배경 청춘 디오라마다.
직장인이 개인 시간 내서 디오라마 만들기 힘들다고요.
글을 쓰면서 나의 모형생활을 돌이켜보니 인형을 개조해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뭔가 높은 경지에 올라야 가능한 거 아니야 라는 선입견도 있었고, 개조 없이 약간의 디테일을 추가하고 접합선 없애는 필요 최소한의 작업 안에서 만족을 해서 그래 왔나 보다.
드래곤에서 나온 SWAT 인형에 에폭시 퍼티로 옷 주름 넣다가 실패한 적이 있긴 하지만.
(아냐, 실패라기에는 그때 쓴 그 에폭시 퍼티가 별로였어.)
박스아트 그림처럼 팔만 살짝 바꿔줬다.
팔꿈치 쪽 1.5미리만 남기고 V컷을 하고 무수지를 흘려서 고정해 줬더니 사포질만 잘하면 접합 선도 퍼티 없이 해결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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