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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밀리터리 피겨 페인팅] 손풀기 - 101공수사단 조소냐 아크릴 물감으로 색칠 하기

by VM 2021. 2. 4.

▲ 서정호 원형사님의 무시무시한 디테일.

피겨

모형을 하게 된 동기? 랄까.

20세기의 유년 시절은 어쩔 수 없이 일본의 서브 컬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고, 문방구에서 100원 언저리에 팔던 고무인형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본다.

 

인형의 등짝이나 발바닥에는 미처 지우지 못한 일본어로 된 저작권 표시가 남아 있던 울트라맨, 가면라이더, 야마토, 캡틴 하록, 퓨처 선장, 사이보그 009, 여기저기 나오는 괴수 등.

이런 카피 제품 중에는 간혹 저작권 표시를 지운 제품도 보였다!

 

많아야 채널 5개 밖에 안되던 TV에서조차 틀어주지 않은 콘텐츠들은 어떤 경로였을지 신기하기만 한 다양한 복제물로 대량 소비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놀랍게도 일본과 그리 시차가 크지 않아 보인다.

실제 콘텐츠보다 파생 상품이 먼저 소비되던 시대.

그 와중에 스토리까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던 친구들도 있었던 걸로 보아, 그 옛날 나름 고급 정보를 일반인보다 자세하게 접한 도련님들도 있었나 보다.

 

누가 봐도 주인공으로 보이는 착한! 편 캐릭터에게 의도적으로 미모를 몰아주던 때라 어린 나이에 심하게 주인공에 감정 이입하게 되어 좋아하는 완구의 주종목은 피겨였다.

 

스토리보다 이미지만 소비해야 했던 시절, 주인공만큼 존재감을 뿜는 악당에게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건 역시 건담의 샤아가 처음이었고, 곽달호 씨가 워낙 잘생겨 놓으니까 모노 아이의 쟈크마저도 멋져 보였다.

물론 그 당시에 건담이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었을 리 없지만, 누가 봐도 건담을 탄 아무로와 싸우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사연 있는 악역으로 유추한 결과다.

 

무튼, 다른 장르의 완구에 비해 사이즈는 작지만 디테일로 승부해야 하는 인형의 존재감은 밀도부터 다르다.

 

 

 

▲ 금속 소재에는 메탈 프라이머를 사용.

화이트 메탈

비교적 작은 스케일로도 만족할 만한 디테일을 즐길 수 있는 피겨의 좋은 점은 다른 장르의 모형보다 준비물이 간소하고, 무엇보다 자리도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취미의 종착역은 부동산!)는 점이다.

래커 발색을 선호하는 1/12 스케일을 포함한 큰 캐릭터 인형과는 다른 얘기.

그래서 오늘은 가지고 있는 피겨 키트 중 첫 포스팅에서 소개한 서정호 님 원형의 화이트 메탈 제품을 골랐다.

밑 색으로 메탈 프라이머와 서페이서를 섞은 걸 베이스로 써봤는데, 둘이 잘 섞이고 붓칠도 문제없다.

 

참고로 메탈 프라이머는 오토류에 많이 보이는 멕기(滅金/めっき: 크롬 플레이팅) 부품을 살릴 경우 지문으로부터 보호하거나 연질 캐터필러 같은 고무 재질 위에 모형용 물감으로 칠하기 전에 쓸 수 있다.

도자기 유약 같은, 멕기 표면에 튼튼하고 투명한 보호 코팅 정도로 여기면 된다.

 

 

 

▲ 냄새가 많이 역하다 (휴ㅂ휴)

예전에는 만년사에서 나온 철로 된 10개들이 조색 접시나 일회용 컵을 썼는데, 세척도 귀찮고, 일회용 컵의 경우 얇은 코팅막이 시너에 녹아 물감 피막에 좋지 않다는 글도 있다.

그래서 찾은 실리콘 트레이.

 

사용 후 그냥 말렸다가 물감만 딱지 떼어내듯이 정리하고 비눗물에 벅벅 비벼서 씻으면 끝!

재사용도 쉽고, 뭐 그냥 최고다.

레진 아트 하시는 분들도 많이들 쓰고 있다.

 

 

 

▲ 아크릴로 된 화장품 오거나이저는 깔끔한 정리에 똻!

수성 수성 수성

애초에 조소냐 아크릴 기본색 3가지에 화이트와 블랙만 사용하기로 했어서 위 사진과 같이 심플한 물감 구성이 나왔다.

물감 욕심이야 안나는 건 아니고, 앞으로 만들 것들 중에는 래커가 아니고서는 안될 것도 있지만, 한동안 피겨와 일부 AFV제품은 삼원색으로만 색칠해 보려고 한다.

 

여러 매체에서 소개하는 조소냐 아크릴 물감에 대한 평도 좋고 멋진 결과물도 많이 보인다.

 

 

 

▲ 웻 팔레트Wet Palette를 만들어 보았다.

웻 팔레트Wet Palette를 급하게 만들어 봤다.

무게감 있는 유리로 된 밀폐용기에 수세미를 깔고 수세미가 완전히 잠기지 않을 정도로만 물을 넣어 주었다.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요즘 많이들 쓰시는 에어 프라이어용 종이 포일을 적당하게 잘라서 맨 위에 올려주면 된다.

 

확실히 물감이 마르는 일 없이 오래 사용할 수 있어서 편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물을 많이 흡수해서 농도가 묽어지는데 살짝 적응하기 어려웠다.

이게 조손자 아크릴만 그런 건지... 다른 아크릴 물감의 물성은 옛날에 써본 리키텍스를 떠올려봐도 에나멜이나 유화와는 확실히 다르다.

붓에 머금을 물감의 농도 조절이 익숙하진 않아도 유기용제 시너와 달리 냄새가 없는 만큼 색칠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 조소냐 아크릴 물감 삼원색 만으로 칠해 본 첫 연습작. 농도 조절을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칠하는 재미가 있다!

삼원색을 이용한 조색이라는 게 이론대로 색이 나와주는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가능성이 보이고 막상 해보면 재밌다.

기본 계조 3단계에 극단적으로 어둡고 밝은 면만 강조해주는 정도에서 마무리!

CMYK만으로 색을 재현하는 프린터만큼 조색 비율에 익숙해지는 게 목적이라 앞으로 갈길이 멀다.

 

색을 만들어 쓰려다 보니 물감 낭비가 심하다.

웻 팔레트에 뚜껑을 닫고 나중에 열어보면 다시 쓰기 어려울 정도로 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색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색칠 한 사이클을 마치고 남는 물감은 아깝지만 과감히 버렸다.

(발레호 같은 비싼 물감이었으면 못할 짓.)

 

조소냐 아크릴 물감을 짧게나마 써 본 소감은 완벽한 무광 마무리가 가능하고 완성 후 피막이 좀 약한 느낌이다.

여러 번 아크릴 레이어를 올리는 덧칠 과정에서 서페이서가 벗겨져서 화이트 메탈이 노출되기도 했다.

메탈 프라이머랑 서페이서를 섞지 말걸 그랬나? 아니면 너무 얇게 칠해져서 벗겨졌을지도 모르겠다.

 

시너 냄새에서 해방되니까 집중도 잘되고 뭔가 입에 물고 마시면서 즐기게 된다. (야호~!)

 

 


 

 

오래간만에 손 푸는 기분으로 만든답시고 사진이 빈약한 불량 포스팅이 되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페인팅 덕에 더 진행은 못하고 현재 세탁용 세제 풀어놓은 물속에서 물감 박리 중이심.

조만간 다시 색칠할 예정입니다.

 

▲ 래커계 밑도장에 아무런 영향 없이 아크릴 도막만 물집처럼 박리된다. 안심하자!

GSI 크레오스의 Mr. 칼라 래커 물감의 중합제도 아크릴 수지 계열이지만, 물성이 달라서 그런지 몰라도 알칼리 세제 영향은 거의 안 받는다.

아크릴 물감은 세탁이나 청소용으로 많이 쓰이는 알칼리성 세제에 하루 정도 담가 두면 물집처럼 피막이 올라오며, 거친 붓으로 벅벅 문지르면 키트 표면에 화학적 대미지 없이 잘 벗겨진다.

 

내일 할 일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