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블완2024

[Day 11] 모형은 타임머신, 유통기한은 내 일생까지만 허락함 - 21 Shades of My Faves

by VM 2024. 11. 18.

▲ 만들면서 신기한 게

사진 색이 너무 많이 날아갔나? 싶죠?

매일 조금씩 다듬고 있는데 표가 안 납니다.

3D 기술로 만든 타미야 인형이랑 비교하기엔 너무 옛 키트지만, 사출 상태나 디테일은 모델러 영역이 아닌 이상 뭔가 만든다는 사실은 같습니다.

 

 

 

▲ 중학교 2학년 때 만들던 기억이 새록새록...

옛 키트는 손 모양이 다 아치 형태인 게 특징이죠.

인젝션 키트가 많이 발전했다지만 여전히 인젝션 인형에서 제일 아쉬운 부분이 손입니다.

그리고 귀, 소매 오프닝, 전투화 바닥 패턴, 전투화 끈, 소화기 멜빵 끈...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

 

학생과학에 실린 '한재규' 작가의 만화 위인전에 실린 퀴리 부인의 본명은 분명 '프렌치-폴리쉬 발음'으론 다르지만, 'ł''l'로 오인해서 /w/발음을 /l/발음으로 표기한 잘못된 발음인지도 모르고 초꼬마 시절 한참을 반복하고 읽으며 외웠던 기억이 떠오르는 건 요 키트의 사출 색을 보자니 생애 첫 타미야 에나멜이 'XF-65, 필드 그레이'였던 게 관등성명처럼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몹쓸 개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첫 단추 잘못으로 인생의 2/3 이상을 오류로 살아간 무언가가 더 있을 거 같아서 살짝 무섭긴 합니다. 퀴리 부인의 만화에는 가난한 대학 기숙사 생활을 이불 위에 의자를 올려놓고 그 무게로 추위를 버텼다는 야무진 모습도 어린 마음에 인상적이었고요. 학생과학에 실린 만화 위인전 중에 또 기억나는 건 '지석영' 선생, '레오나르도 다빈치''파스퇴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위키백과 말로는,

'Maria Salomea Skłodowska 마리아 살로메아 스크워도프스카'

가 맞다고 합니다.

 

 

 

▲ 새록새록 보다는, 더 디테일하게 생각납니다

액세서리 색칠 줄인다고 가스마스크 멜빵 몰드를 없애고 투박해 보이는 헬멧 턱끈을 갈았는데...

없애는 작업이 손이 더 가는, 그런 작업이었고요.

판쵸나 잡낭 같은 거 다 달지 말고 작업량을 줄이자 싶었으나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까 너무 허전하고... 뭐 이런 변덕도 모형을 즐기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 실루엣만 보면 타미야에서 발행한 벨린든 작품집도 생각나고 말이죠

옛 키트 특유의 터치가 '오오츠카 야스오 大塚 康生' 선생 그림 같아서 정이 갑니다.

실제 이분 감수로 타미야 인형 포즈를 참고했다는 기사를 읽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거겠죠.

오블완 일정 안에 색칠까지 마치자는 목표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완성하면 이 비넷트가 실렸던 타미야 주니어 뉴스랑 같이 포스팅하겠습니다)

 

 

 


 

 

 

미래에 추억으로 남기려면 지금 질러랐!

 

▲ 저 찻잔 안의 비네트, 타미야 본사에 있을까요? 누구 작품이고 흑백 말고 칼라 사진으로 소개한 매체는 따로 있었을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중2 때보다 타협점이 높아져서 손이 많이 가지만, 신기하게도 이걸 만들던 기억이 너무 자세하게 떠올라서 놀랍고 더 재밌습니다.

(옛날에 만든 기억이 없었다면 그냥 지금 처음 접하는 거였겠죠. 사물에 깃든 추억은 그 물건이 언제 적 거냐가 아닌 내가 접한 시점과 인상에 남을 만큼 충분히 함께한 시간과 사건이 중요한 겁니다)

시간여행으로 과거를 간다고 해서 인생을 바꾸고 과거를 뒤틀고 하는 극적인 반전보다는 할 일은 까먹고 이렇게 당시에 쓰던 물건 다시 보면서 반가워하고 신기해하다가 무한 루프에 빠지는 한가한 이벤트만 가득할 거 같기도 합니다.

옛 키트를 그 당시 모습 그대로 바뀜 없이, 게다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모형이야말로 가장 저렴한 시간여행 체험판이 아닐까 싶은 가을밤입니다.

(어딘가 잠자고 있는 옛 금형을 살려서 재생산으로 빛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수익성이 보증받는 문화가 일상이 되면 좋겠네요)

 

 

 


 

 

 

온라인 쇼핑몰을 하면 배송 서비스 이름은 'Alan Parcels Project'로 하려고 했습니다

♬ The Alan Parsons Project - Old and Wise (1982)

나이가 현명함을 쌓는 테크 트리가 될지 아닐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으나 여러 인생 그래프에서 정점을 찍고 내려가기 시작하는 좌표점을 하나 둘 보면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가 했던 말들이 떠오릅니다.

 

"나이 들어 필요한 건 멋진 풍경을 바라보는 거야."

설마 한강 뷰 말씀하신 거? 그런 애기가 아니잖아!... 가 아닐 수도!!!

"나이 들어 좋은 건 놀랄 게 없는 거군."

나이 먹고 놀랄 일이라면 진짜 큰일이겠군!

"노인이 되니까 잃을 게 적어서 좋네."

나, 요즘 모형 도구는 왤케 늘어나는 거임?

 

 

 

모형 취미나 인생이나 지금이 제일 재밌고 가치 있다고 믿습니다

♬ Parcels - Bemyself (2018)

아직 나이 든 게 아니라서 '소피'의 대사를 이해하는 건 앞으로 30년 뒤로 미뤄둬야겠습니다.

여전히 잘 살아있는 감각은 소소한 취미생활에 거창한 거 필요치 않으니 고맙고요.

그런데 확실히 밤 쉬프트(심야 모형)는 이제 다음날 하루가 넘 심(힘)들어요.

 

그... 그게 늙은 거! 떼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