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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완2024

[Day 10] 핼리혜성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복고란 이름의 기억, 이야기 - 21 Shades of My Faves

by VM 2024. 11. 17.

▲ 동생만 아빠랑 같이 프라모델을 하면 큰 아이는 섭하겠쥬?

'복고'라는 말을 처음 배운 기억에는 '복고'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퍼지던 1990년대 초반, 이를 견인한 드라마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전란 시절에 태어난 주인공들이 6, 70년대가 되어 청소년기와 성년을 거치는 드라마 내용에 당시 3, 40대 엄마, 아버지 세대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하면서,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 열풍으로 각종 생필품이 옛날 패키지로 출시하는 등 유통 시장을 크게 움직였던 것처럼 사회적으로 이슈였습니다.

(일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못 본 응답하라 시리즈가 나온 지 벌써 12년이... 대신 와이프랑 큰아이가 좋아합니다)

어렸던 저는 드라마에 공감한 추억보다 직접 경험해 본 적 없이 동네 형들이 입고 다녔던 옛 교복이나 가방 같은 방송 소품을 보는 게 재밌는 정도였고요.

 

 

"펜이랑 잉크 있어요?"

대학가 근처에 살고 있었어서 가까운 문방구에 들러 드라마가 불러온 검소한 유행에 편승합니다.

드라마에 나온 장면 때문에 필기용 '딮 펜'이랑 잉크 매출이 올랐다는 뉴스가 나왔을 정도였죠.

필기용 펜촉에는 잉크를 더 많이 머금을 수 있는 파란 플라스틱 부품이 붙어있었습니다.

"펜대는 안사니?"

(모나미 153 볼펜의 푸쉬 버튼에 펜촉을 끼워 써 줘야 뭘 좀 아는 겁니다. 크하하)

 

 

그러고 보면 복고라는 단어는 몰라도 그 느낌은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기록의 민족이라지만 남아있는 기록을 보기 힘들고, 보관하기 어려워서 아낌없이 버려야 했던 현실과 타협한 소지품들은 기억 속에 남겨야 했고요.

이때 인터넷이나 고화질 카메라를 삼켜버린 '휴대전화라도 있었더라면'이란 가정은 상상만 하자니 억울합니다.

(역시 버리지 말아야 했는데...)

 

 

"하비재팬!"

예전 포스팅에서 언급했지만, 올림픽이 계기였는지 눈에 띄게 양산 소비되는 일본의 서브 컬쳐는 누군가의 선택으로 근본 없이 카피 되어 양산되었고 그중 표도 안 났을 작은 소비자였던 저는 소심한 소비를 하다 오리지날을 접합니다.

"우쒸, 옛날에 가지고 놀던 거 여기에 다 나오네."

 

 

8, 90년대 하비재팬에 실린 LD나 VHS로 재발매하는 옛 타이틀 광고를 보면 본 적 없는 옆 나라 시리즈물임에도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지는 옛 분위기만큼은 익숙했습니다.

이를테면 옛날 자동차 모형 제작 기사에 더 이상 공도에서 보기 힘들어진 둥근 프레넬 렌즈의 헤드라이트 디자인이 반가운 느낌이랄까.

모델러 개인의 강한 주관이나 가르침은 최대한 배제하고, 필자가 모형을 다루면서 언급하는 개인 관심사 주변의 다양하고 잡다한 지식의 원천이었을 여러 분야의 정보와 열린 시각을 보는 게 합법적으로 남의 일기장을 보는 거처럼 좋았습니다.

 

 

익을 대로 익었을 일본 모형 문화에 맞게 6, 70년대 완구와 모형을 다루는 작은 특집이라도 실리면 직접 경험했던 과거의 내것도 아니면서 괜히 반가운 착시의 경험을 즐깁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피코탄'이나 '빠삐 사진기'같은 사소한 완구를 기억하는 친구를 찾기도 어려웠고 말이죠.

"용돈, 아니 알바한 돈 조금 아끼면 모델 그래픽스도 가능하겠군!"

 

 

 

빠삐 사진기는 놀랍지도 '않게' 일본 애니메이션 '유성소년 빠삐'에서 온 이름입니다

🎥 遊星少年パピィ(1965 - 1966)

제가 태어나기 전 우리나라에서도 방영한 기록이 보이는 '유성소년 빠삐 遊星少年パピィ'입니다.

인기에 편승한 목걸이 펜던트랑 네거티브 필름의 이미지를 감광지에 전사하는 장난감은 TV 방영이랑 상관없이 80년대에도 살아남아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놀던 필름 별도로 30원짜리 빠삐 사진기에는 '마루치 아라치'가 인쇄되어 있었고, 렌즈... 일리 없는 평판 유리는 공장에서 쓰고 남은 자투리를 써도 됐을 창조경제의 교과서를 보여주는 그 시절 그런 장난감이었습니다.

(네거티브 필름을 말아 넣은 필름 통 역시 재활용으로 우리나라에 소개한 적 없는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HJ에 실린 건프라 관련 고무 인형 기사에서 제가 어릴 때 봤던 물건을 확인했던 순간의 반가움은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공중파에 풀리지 않은 애니메이션 정보를 모형을 매개로 느끼는 감동들은 학교나 집안에서 칭찬받을 확률보다 높은 주기로 반복 학습했고요.

배신하지 않는 소박한 내손내산으로 매달 안 사보면 왠지 허전한 일상이 된 기억이 이젠 추억이 되고 복고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 '복고'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뭔가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A야, 지난주 시험 기간이라 끝나면 주려고 했는데, 탱크, 비행기 뭐가 좋아? 자동차는 어때?"

아마 말로 표현은 안 했어도 어제 동생이 탱크 만드는 모습에 속으로 부러웠을 수 있습니다.

아니더라도 신경 쓰이는 건 저라서 말이죠.

(두 아이 발란스 맞추는 게 소소한 행복이라... 지난번 미션은 동생이랑 사이좋게 똑같이 각자의 건프라군 만들기였습니다)

 

"아빠, 나 오늘은 도~~~저히 (한 손바닥과 고개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저으면서) 무리무리, 좀 바빠서."

그래서 B랑 만드는 탱크, 능숙(!)하게 다음 주말로 미뤘고요. ㅋㅋㅋ

변성기가 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는 사실에 매일 감사하고 있습니다.

 

 

보셨죠? 제가 블로그에 쓸 소재가 모자란 게 즈얼대 아니라 포스팅할 시간 확보가 어려운 겁니다.

평소 포스팅이 적ㅇ, 없었던 건 전원, 부팅, 인터넷, 그리고 로그인이 필요 없는 수기형 다이어리에 밀려서 그렇습니다.

아, 잠깐, 와이프도 프라모델 좋아하는데...

 

 

 


 

 

 

영화 '이니시에이션 러브 (2015)'는 복고를 복습하기 좋은 영화였습니다

♬ Off Course オフコース - Yes - No (1980)

이 영화는 OST가 특별했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노래를 오랜만에 찾아보게 했고요.

그런데 영화 내용은 기억이...

충분히(?) 야(!)했던 거 같기도 하고...

 

 

 

추억이 기억에 보내는 바람은,

♬ Co Co - Remember Me (2017)

기억해 주길 바라는 게 욕심인가 싶고

내가 기억하는 쪽이 맘 편한 성격이라

블로그 이름에 기억을 넣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