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꼬맹이였을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몸살이 날 때마다 종종 가위눌림을 동반하면서 저를 괴롭힌 꿈이 있습니다.
심하게 아플 땐 헛소리까지 해서 한방, 양방(응? 우린 '의료'라고 '의료!') 병원 셔틀 했던 어릴 적 기억도 있고요.
집에 읽을 책이 마땅치 않고 심심하던 중에 눈에 띈 '꿈의 해석'은 현학적인 단어 남발에 알아먹기 어려워도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이랑 비슷한 예시를 보고 신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열이 나서 온몸을 얼음찜질할 때의 불쾌함이란.
애들이 아플 땐 괜히 '나 때문인가?' 싶었던 구체적 이유들에 다시 그 나를 괴롭혔던 꿈이 뭔 의미였을지 의식은 흐르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규칙은 이런 사사로운 생각을 잊는데 효과는 아주 좋습니다.
비교적 꿈을 많이 꾸는 편이고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아서 '꿈의 해석'을 읽고 일기장 한구석에 그날 꾼 꿈을 적는 게 일상이 됩니다.
그날 있었던 소소하게 지나친 일상 몇 꼭지를 소재로 꿈속에서 변주되는 무의식의 장난에 맨정신으로 꿈을 의식해서 행동하다 보면 가끔은 매칭이 성사되기도 했습니다.
"형광등 초크다마 갈다가 감전됐으니 오늘 꿈에는 뭔가 나오겠지?"
그렇다고 깊이 있게 파거나 관련 책을 많이 사보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영화 잡지 'KINO'의 표지 영업에 당해 지적 허영심이 극에 달하고 나름 사전 찾아가며 이해해 보려고는 했으나, 역시나 저는 그림만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위 영상 썸네일의 사진을 표지로 쓴 실험영화 책 표지에 끌려 무지성 결제를 한 결과 남아있는 기억이라고는 시각적으로 신경쓰였던 책에 실린 영화 속 흑백 스틸 이미지뿐입니다.
이런 세계도 있구나 싶었고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県) 닛산(日産)자동차의 다카마쓰(高松) 우메끼(梅木)훈련소에서 한인 여성 노동자 97명이 단식동맹을 결성했다는 1943년,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 여성 감독은 영화사에 영향력을 남긴 작업을 발표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 내용은 기억에 없어도 비교적 외우기 쉬운 '마야 데렌 Maya Deren' 이란 이름이랑 꿈을 소재로 한 유명한 흑백영화가 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기에 유튜브 세상이 도래하고 검색을 합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 뜨고 가위에 눌리는 경험을 하죠.
"..."
가위눌린 몸을 푸는 방법은 이를 악물면 어금니에서 얼굴, 얼굴을 중심으로 온몸으로 쫘악 풀림의 기운이 퍼집니다.
(영화 속 마법이 풀리는 연출 장면은 아마도 눌린 가위에서 풀렸던 경험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끼 싶었던 게 저의 첫 소감이었고, 얼음땡 놀이를 이렇게 실제로 느끼면서 할 수 있다면 실감 날 거 같았습니다)
중력을 거스르는 공간, 두 다리의 간헐적 부재, 총천연색으로 사물을 인식해도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 가끔은 태양처럼 눈 부신 빛을 보기도 하고, 무너진 인과 관계에 이벤트 사이의 점프 컷, 비현실적인 인물이 나와도 의심 없이 동화되는 기이함, 그 와중에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깰 정도로 무서운 공포, 잠에서 깨어 정신이 들면 바로 증발해 버리는 강한 휘발성 기억, 신경 쓰지 않으면 몰라도 될 꿈의 문법에 관심이 있었음에도 맨정신에 이걸 보자니 순간 멍해졌습니다.
"와, 이거 현실에서 눈 뜨고 꿈을 꾸느라 인지 문법이 전도되면 완전 미쳐버리겠는데?!!"
소위 미친 사람이 하는 행동은 실생활을 침범해 버린 꿈의 문법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주, 바다, 생명, 로봇, 뇌, 이런 신기한 세상에 끊임없는 질문과 답을 얻으려는 노력에 동참하는 기회는 없었어도 여전히 동경하고 궁금하긴 합니다.
인간의 영원한 수수께끼인 죽음을 우리는 매일 잠에 들면서 예행 연습하는 것일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요즘 잠에서 깬 아이들에게 잊지 않고 물어봅니다.
"오늘 무슨 꿈 꿨어?"
긴 꿈을 꾸거나 여러 꿈을 꾸는 날도 있어서 공간이 모자라면 살짝 곤란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적긴 적습니다.
애들이 꾼 꿈 얘기를 들으면 적기도 하고요.
제가 찾지 못한 답을 애들이 찾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 속 소설(기대)에 반응은 아직 '시큰둥' 입니다. 크하하
순수하게 일정 관리만 하자면야 구글 행성 안에서 살아도 문제는 없지요.
일정 관리하는 앱을 쓰는 게 힘든 나이는 아니지만 언제 데이터가 날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과 섭종이라는 재앙, 계량할 수 있는 귀찮음의 총량을 동반하는 백업, 그리고 전원 연결(여기저기 널브러진 a.k.a. Line Town)이 번거로워서 손으로 씁니다.
간헐적 낙서까지 수용하는 다이어리의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다 보면 제약 속 선택의 자유를 위한 포기도 배웁니다.
저보다 제품 설명이 친절하고 자세한 제조사 사이트입니다
미스터, 아니아니, '이터널 선샤인'의 '미셸 공드리' 감독이 그리는 꿈 꾸는 듯한 뮤직비디오입니다
꿈의 문법을 멋지게 표현한 영상이지만, '오후의 올가미/그물망'처럼 보면서 가위에는 눌리지 않았고요.
대로변 인도와 방구석에서 얼굴 가리고 드럼 치는 분이 본 영상의 감독, '미셸 공드리 Michel Gondry'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웬만하면 체크하고 포스팅하는 평소와 달리 오늘은 사실 여부 확인은 안 하렵니다.
기억의 오류가 일상인 우리 삶에서 꿈에서만큼은 '팩트 체크 (스트레스) 프리'니까 오늘만(은) 패스!
저에게 인생 음악을 많이 남겨준 '치보 마토 Cibo Matto'의 뮤비도 미쉘 공드리 작품입니다
흔히 말하는 현지인의 억양(본토 발음)이 아니라도 다양한 문화가 섞이면서 충돌하는 새로움을 좋아합니다.
restaurant 끝에 /t/ 발음 넣어서 읽었다고 본인이 틀린 것도 모르고 발음 지적했던 정신 나간 대충놈심한말이 급 생각나네요.
내일은 금요일, 좋은 생각, 즐거운 생각, 행복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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