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박스 기준 두 박스 정도 분량의 만화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 꺼 말고 제 것만, 그런데 의외로 저희 애들은 저만큼 만화를 좋아하는 거 같진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막네 아이가 살짝!... ㅋㅋㅋ
덕분에 뭔 소린지도 모르고 그림 구경은 잘했습니다.
실사풍에서 카툰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삽화만 보기엔 안 읽고 지나간 내용들이 아깝지만, 뭐 얻은 거만 좋게 생각하려고요.
포스트잇이 처음 우리나라에 상륙했을 때 서너 장 정도 써보라고 책 안 광고면에 붙어있던 샘플로 처음 구경한 기억도 나고 이젠 일상이 된 이케아란 가구의 존재를 알려준 잡지죠.
겨울을 준비한다는 지난 휴일 포스팅이 이른 감 있어서 가을에 듣기 좋은 곡으로 시작합니다
가사에 눈이 내린다는 언급이 있으니까 제목이 Autumn이라고 해서 딱히 철 지난 선곡은 아닙니다. 크하하
일교차가 심해지고 조만간 입김도 나오겠지만, 요즘 낮에 햇살이 고민을 날려줄 만큼 따뜻합니다.
가울, 혹은 겨을 느낌의 이도 저도 아닌 안찰스 화법으로 잘 안 읽는 책 소개하기도 따악 좋은 날씨죠.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려있던 서양식 조크를 이해할 만큼 사전지식이 없다 보니 '광수 생각' 같은 만화 소재로 재생산되었던 '웃음은 명약'에 실린 웃음 포인트를 이해하고 넘어간 타율은 1할도 안 됐을 겁니다.
십자말풀이는 너무 어려워서 시도도 안 했고요.
좋아하는 그림은 특정 일러스트레이터가 반복해서 납품(?)하고 있음을 알아볼 변별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지 광고에 거의 항상 실렸던 롤렉스는 사진의 초/분/시침이 가리키는 위치가 늘 똑같았고, 항상 28일을 보여주는 날짜 창에 무언의 디자인 폴리시Policy를 좋아했습니다. 2, 3, 5학년 때 반 번호가 28번이라 괜히 특별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동아출판사에서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만들면서 늘어났던 같은 출판사의 책 광고 지면에 소개한 몇몇 타이틀은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현대과학 이론을 쉽게 풀이했다며 출판사가 풀어놓은 덫에 걸린 결과가 오늘의 포스팅입니다.
아는 건 없어도 아는 척은 해보고 싶었나 봅니다.
초딩 5학년, 대충 친하게 지내던 L.종환이란 친구 집에 놀러 갑니다.
이층집 1층, 현관 정면에 보이는 통로를 향해 거실을 지나면 오른쪽 벽에 친구 방문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전형적인 80년대 중산층 가정에 동생 방은 따로 있었고요.
친구 방 책꽂이에는 책이 많았는데 그 중 눈에 띈 것은 학습만화 전집이었습니다.
소년지나 보물섬에 실린 '윤승운 선생님'의 '맹꽁이 서당'쯤은 되어야 학습만화라고 생각했는데 이 친구는 정보 밀도가 저언혀 다른 만화책을 총천연색으로 보고 있던 겁니다.
지구를 드릴로 뚫고 들어가면 맨틀mantle이 나온다는 사실을 칼라 만화로 보는 느낌은 꽤나 신선했습니다.
땅을 파고 들어가는 로봇은 봤어도 지구의 구조를 알려주기 위해 일당 얼마인지 걱정 없이 해맑게 웃는 얼굴로 지구를 탐험하는 만화 속 미성년의 주인공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학습만화 포맷으로 TV에서 본 애니메이션도 많았지만, 전집 형태로 된 학습만화에서 상식을 쌓은 녀석의 발표력이 여기에 기인한다는 비밀(?)에 생각이 많아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보다 한참 전에 우연히 지인이랑 점심을 먹고 있는데 건너편에 보이는 가정집을 식당으로 개조한 건물이 눈에 익어 자세히 보니 이 친구 집이었습니다.
(평균적인 중산층보다는 좀 더 높았던 걸로 상향 수정합니다)
사교육은 1도 안 받아본 적이 없어서 학원가 관련한 정보의 폭은 매우 좁지만, 독재자가 금지한 입시 학원을 본인의 자식들이 대학생이 되자 기적처럼 사교육 시장 개방이 옵니다. (기분 탓인가?)
보이지 않는 손이 바뀐 정권을 통해 윤허한 혜택인지 우연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이후 참고서 시장도 경쟁이 붙으면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다양한 편집을 앞다퉈 시도하는 시각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었나 봅니다.
뭐, 초꼬마 땐 동아, 표준밖에 몰랐고 전과는 새 책은 고사하고 물려받기라도 하면 풍족했습니다.
(당번이라 담임 선생님 책상 청소나 해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던 '교사용' 딱지가 붙은 흑백 표지의 참고서는 만지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마법서처럼 보였습니다)
"자기야, 혹시 내 책 박스 중에 분실된 거 있나?"
"글쎄..."
여러 번의 이사 중 두 번은 하필 두 번 있었던 저의 단신 부임 기간에 있었고 아무리 안 읽는 책이라지만 산 기억마저 없지는 않아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이사로 짐을 확인해 본 결과 누락이 확실한 마이너스 재고 몇 권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혼자 이사하느라 힘들었을 거라 말을 더 잇지 않습니다.
없어진 재고(?)는 학습만화계의 블루칩,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입니다.
이젠 애들이 읽어도 되겠다 싶어 꺼낸다는 걸 깜빡하고 지나치다 마음먹고 찾으니 이게 안 보였던 거죠.
고려원에서 나온 흑백 인쇄에 손 글씨였던 구판인데 최근에는 디지털 작업을 거쳐 칼라에 이미지 폰트로 다시 편집한 걸 '김영사'에서 내놓고 있습니다.
한국일보사에서 부활시킨 학생과학 초기, '사랑의 학교'를 연재했던 작가가 학습만화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동아출판사에서 '송병락 교수'의 책을 같은 제목으로 각색한 '자본주의 공산주의'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만화로 내놓습니다.
정보량의 불균형에서 일방통행으로 설득당하고 의문을 가질 지식은 없다 보니 그냥 뭔가 있어 보여서 산 책은 의외로 역사 공부에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슷한 그림체와 정보 전달 문법으로 미술사, 음악사, 경제를 설명하는 만화가 양산되는 당시 상황은 지각변동 급이란 표현이 과장은 아녔을 겁니다.
외국 여행할 준비도 안 된 먼 미래의 현실을 미리 준비하라며 학교에서 강매한 글로발 예절 교육 책이 있었습니다.
기억나는 건 테이블 매너랑 승용차 좌석의 우선순위였던, 초꼬마에게 왜 팔았는지 모를 책의 내용을 '먼나라 이웃나라'의 시작, 프랑스 편에서 식사 예절을 복습합니다.
고려원에서 나온 '먼나라 이웃나라'는 네덜란드 편으로 시작하는 '김영사' 버전이랑 다르게 프랑스 편으로 시작합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인터뷰 기사에 실린 유학 생활 이야기는 책 한 권에 담아도 잘 팔릴 무용담처럼 신기했습니다.
이원복 교수의 이름값은 주요 일간지나 시사 주간지 연재로 이어졌고 종종 뉴스에도 나오는 유명세에 이어 자기 복제한 제목의 '세계의 만화 만화의 세계'라는 외국 카툰을 소개하는 책을 내놓았고 미술 교과서 밖 유럽의 상업 일러스트만 따로 모아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아, 와인 붐에 편승해 나온 '세계의 와인 와인의 세계'가 진정한 자기 복제한 제목이군요.
없어진 책은 빨리 잊어버리고 제가 누린 혜택(?)은 공유해야겠다 싶어 새로 '먼나라 이웃나라'를 사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별로 안 좋아하네요. ㅋㅋㅋ
저의 취향을 강요하지 않는지라 희미한 기억의 레이어를 복사에서 멀티플라이로 진하게 하려고 읽어 봤습니다만... 2 권으로 위치 이동한 프랑스 편에 보이는 사소한 오타를 발견하고 찾아본 출판사 홈페이지에는 정오표도 없고, 이래저래 저도 아이들 입맛에 동조화되었는지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책보다 만화가 보고 이해하기 편하다고 생각했던 과거를 다시금 복습하는 데 조금 불편함이 섞인 건 작가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가 요즘엔 책이랑 상관없이 '뭔 나라 이런 나라'로 읽힙니다)
"이 책 어때?"
언젠가 서점에 들른 김에 '먼나라 이웃나라' 추천 실패(?)를 만회한답시고 또 먼나라 이웃나라 풍의 학습만화를 꺼내서 살짝 물어만 봅니다.
"별론데!"
"...(단호함이 빠르네)"
5분도 안 되어 책 몇 권을 들고 오더니,
"아빠, 이 책이 더 나은데! 아빠가 더 좋아할 거 같아서 골랐어."
"..."
보기 좋게 한 방 얻어먹은 날이었습니다.
"B야, 전에 골라준 책, 이거 아빠 아직 다 못 읽었어, 미안."
"아~, 알아!"
"..."
기분 좋게 한방 융숭하게 대접받은 날이었습니다.
1980년대 KBS에서 딱 한 번 본 기억에 찾아보니 이렇게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당구에 빠지면 잠에 들기 전 천정이 당구대로 보인다는 클리셰를 저는 이 만화 덕분에 좀 일찍 이해했습니다. 크하하
L.종학이라는 친구의 부르심을 받고 처음 쳐본 당구는 부동시보다 못 치는 실력의 한계를 일찍 깨달아 빠르게 포기했고 누가 물어라도 보면 '큣대만 잡아봤습니다.'가 단골 멘트입니다.
이 만화를 본 이후 며칠을 머릿속으로 '다시 보고 싶다!'를 반복 재생했지만 평생 재방송 없던 기억 속 영상을 유튜브로 재회합니다.
(유튜브 만쉐~!!!)
'꼬마 자동차 붕붕'이랑 같은 그림체라 먼 이산가족을 만난 듯한 친숙함도 내용만큼 좋았습니다.
자율 주행과 대화형 자동차의 '두 커다란 축'이라면 전격 제트 작전의 '키트'랑 꽃향기로 가는 '붕붕' 아니겠습니까.
(미안하다 아스라다!)
더빙 방송 본방을 다 사수한 건 아니라서 기억도 잘 안 나는데 언제 시간 나면 유튜브로 정주행해야겠습니다.
(상큐, 알라뷰 유튜브)
가을에 즐겨 듣던 삿대질, 아니아니 듣기 좋은 노래입니다
연인들이 뽀뽀하기 좋은 날씨일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땀은 안 나니까요.
ㅋㅋㅋㅋㅎㅎㅎㅎ
유튜브 영상을 남발하면서 때우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옛날에 즐겨듣던 플리 순서로 이어 듣던 관성을 벗어날 탈출속도를 못 얻었습니다.
몇몇 노래는 끝나는 부분에서 다음 곡이 눈치 없는 측두엽에서 자동으로 재생되는 희귀 증상이 있다 보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좋아하는 노래는 바쁜 걸음의 방향도 휘는 강력한 중력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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