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개념 없고 시계 볼 줄도 몰라서 우연히 틀다 만나는 새로운 세상.
알아듣지 못해도 애니메이션이란 매체가 가진 몰입감에 어른들의 관심이 좀 더 있었더라면 사회생활이 더 편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 처음엔 흑백으로 접했습니다.
터널처럼 보이는 저 가운데 너머에 뭔가 있을 거 같았는데 말이죠.
외국어 조기교육이란 말은 사회생활 하면서 처음 들었고요.
그저 머리글자 M 아래에 붙은 콩나물 때문에 어깨를 들썩이는 상반신으로 보였던 기억은 또렷합니다.
초꼬마가 되기 전에는 딱히 제가 주도적으로 TV를 직접 틀면서까지 챙겨보던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의외로 나오면 보고, 아니면 말고, 꽤나 심드렁하니 마실 나가서 유치원 안 다니는 동네 한량(?)들이랑 놀고 집에선 낮잠 자느라 바빴습니다. 크하하
미취학 아동 때는 채널 특성상 군인이 나오면 무서워했던 기억은 확실합니다.
350원짜리 학교 모자에 가슴엔 손수건이랑 이름표를 달고 입학해서야 한글을 접합니다. ㅋㅋㅋ
유치원을 다녔던 친구들과 달리 진도가 뒤처진 덕에 갱지를 흑표지와 책철 혹은 끈으로 제본해서 만든 연습장에 구리스펜, 그러니까 검은색 종이 말이 색연필로 자음, 모음 연습하던 기억은 또렷합니다.
"너 글씨 못 읽냐?"
인생 첫 짝꿍으로 학기 중 맹장 수술을 하고 온 'Y. G림'이는 선행학습이 안 되어있던 저를 자주 답답해했습니다.
"지금 몇 시니?"
집 거실에서 놀고 있던 저에게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우리 집을 들렀던 동네 형이 현관 문에서 물어봅니다.
그런데 초꼬마 2학년임에도 바늘 시계를 볼 줄 몰라서 대답을 못 했습니다.
"아직 안 배웠구나, 저기 벽에 걸린 시계에 짧은 바늘이 시간이고, 긴 바늘이 분이야."
그 형의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날 밤 째깍거리는 벽시계 소리가 유난히 신경 쓰였습니다.
새벽이었는지 늦은 밤이었는지 졸다 깬 TV 화면에는 위 영상이 AFKN에서 흑백으로 방영 중이라 숨죽이고 끝까지 봅니다.
괴수 대백과에서 봤던 스틸 사진이 움직이는 감동은 닌텐도 DS보다 낮은 해상도는 큰 문제가 아녔습니다.
미니 고질라, 메카 고질라가 나오는 에피소드 역시 AFKN으로 접합니다.
유튜브에 입주한 이분 방송을 재방송 삼아 옛 노래를 즐겨 듣습니다
이 방송을 즐겨 봤어도 '케이시 케이섬 Casey Kasem'이란 이름이 귀에 들렸을 리는 없고요.
(아저씨 얘기보다는 소개해 주는 뮤비 영상에 더 눈이 갔죠)
'세서미 스트리트'는 가끔 KBS에서 더빙으로 보여줬고 마크로스의 영미 버전인 '로보테크'는 좀처럼 제시간에 보기 어려웠습니다.
오늘 포스팅의 링크는 모두 다 유튜브 행성에 서식하면서 예전부터 궁금했던 거 리스트를 발굴한 결과입니다.
초상권 때문인지 사진이 아닌 에어브러시 일러스트지만 어찌나 잘 그렸는지 누군지 바로 알아봤습니다.
(위 사진은 이전 포스팅에서 살펴본 월간 뉴타입에 실린 광고입니다)
'케이시' 아저씨 이름은 이때 옆 나라 잡지로 알게 되었고요. ㅋㅋㅋ
음성 파일은 CD, 카세트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는 주문서 옵션에 세월이 많이 발전했음을 체감합니다.
카우보이 비밥의 바운티 헌터에 이 방송 오프닝이 떠올랐습니다
'돌리 파튼 Dolly Rebecca Parton'이모님도 나오셨던 기억이 있는데 확실치는 않고요.
아트록 전도사 성시완 아저씨가 라디오 방송에서 영국 백화점 앞 펑크족이 얼쩡거릴 때 특효약을 알려주십니다.
"컨트리 음악을 틀면 됩니다."
옆집 친구 Y.SJ이 동생 Y.HJ은 이 퀴즈의 룰을 안다고 자랑했습니다.
저는 알아듣지를 못하니 긴장감도 없고...
비슷한 포맷으로 우리나라 공중파 방송도 있었죠.
머리숱 많은 '푸틴' 닮은 이 아저씨 역시 뭔 말씀 하시는지는 모르겠고 푸짐한 상품을 소개하는 극적인 편집에,
"저걸 준다고?"
했습니다.
자주 본 건 아녔고 오프닝에 보이는 저 미니어쳐는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했네요
아마 오프닝만 눈에 띄어 보고 내용에 흥미를 못 느껴서 채널을 돌린 거 같은데, 이 쇼는 정말 진국입니다.
위 영상 16분에 소개하고 바로 만나러 가는 작가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배고픈 애벌레 The Very Hungry Caterpillar'로 유명한 '에릭 칼 Eric Carle'로, 이분 콜라주 작업의 기본이 되는 각종 종이 텍스쳐를 어떻게 작업하는지 보여줍니다.
(이번에 포스팅 덕분에 찾은 기분 좋은 소득입니다!!!)
'톰 행크스 Tom Jeffrey Hanks'의 영화, 'A Beautiful Day in the Neighborhood (2019)'가 아니었으면 아이들을 위한 방송이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지나갔을거고 그저 초지일관, 오프닝에 미니어쳐 영상만 또렷합니다. ㅋㅋㅋ
얇은 종이에 과슈나 아크릴 같은 물감이랑 마스킹 졸 등으로 만든 텍스쳐를 오려서 새로운 이미지로 만드는 작가입니다.
작업 과정도 재미있고 결과물도 백인 백색일 딱히 어려운 테크닉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우리네 현실은 이걸 받아줄 즐길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없죠 다들.
이렇게 얘기하면 착한 이미지 쌓는 '척'하는 글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에릭 칼' 작가의 텍스쳐 만드는 작업으로 일러스트는 아니지만 뭔가 만든 결과물은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낸시 레이건' 여사가 'Just 멈 Say 춰 No'라는 캠페인에 나오던 시기에 봤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나마 우리나라 외신 뉴스에서 해당 캠페인 관련 보도를 해줘서 그게 뭐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학교 끝나고 집에 혼자 있을 땐 알아듣지도 못하는 AFKN을 본 이유는 낮에 공중파 방송은 화면조정 중이었죠.
볼 거 없고 할 거 없으면 그나마 위로해 주는 외국어 방송이었습니다.
우리네 TV 광고가 일본 걸 보고 베낀다는 경각심을 전달하는 글을 처음 접한 건 아버지께서 보시던 시사 주간지 기사에서였습니다.
(엄마는 '요리'를 포함 살림 이것 저걸 잘하신다며 자랑하는 딸의 학예회 발표에 흐뭇해하는 엄마의 미소에 이어 "아빠는 설거지를 잘하십니다."로 끝나는... 전자레인지 광고주는 쓰리 스타였고, 이 광고가 일본 가전회사 광고를 참고했다는 기사였습니다)
하지만 외국의 그 무엇을 보고 참고한다는 예는 AFKN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었고요.
인물을 정교하고 하드하게 희화화한 방송을 보고 얼마 지나서 우리나라도 비슷한 포맷의 정치인 인형극이 나왔거든요.
아카데미과학의 현대 보병 셋트나 타미야 독일군 인형을 접해서 재밌게 봤습니다
뭔 소린지는 몰라도 배우들의 딱딱한 억양에 독일어 흉내를 내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고증을 떠나서 군장을 보는 재미가 있었고요.
관객이 웃는 가성이 들어간 걸 봐서는 코메딘데 당췌 뭔 얘긴지 모르면서 그냥 따라 웃었던 지난 모습에 현타가...
오블완 vs 약속
"해야지, 오늘은 우선 포탑만 만들어볼까?"
오블완이냐 약속이냐, 결론은 둘 다 포기 할 수는 없고, 지난번 건프라 이후 두 번째가 되는 외날니퍼 쓰는 게 정밀해지면서 꽤 사간이 걸리다보니 포스팅 마감도 아슬아슬했습니다.
(아트나이프를 안 쓰고 외날 니퍼로 최대한 깨끗하게 게이트 처리가 숙제였고, 저는 게이트 클린업이랑 접착제 붙이는 거만 옆에서 도왔습니다)
아머 모델링 부록이었던 요 키트, 재발매 없을 거라는 말이랑 다르게 일부 파츠 개수해서 따로 제품화 했더라고요.
부품이 작고 세밀한 만큼 작고 섬세한 파팅라인이 칼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ㅋㅋㅋ
주말에 심심하면 옛 신문 아카이브의 방송 시간표를 보면서 영상을 찾아보곤 합니다.
AFKN의 주한 미군과 함께했던 MBC 명랑운동회 영상은 찾을 수 없지만, 지루한 시간 달래주던 이름도 가물가물한 옛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 좋고요.
영어 옹알이에서 더 진전 없이 봤던 기억 속 프로그램 찾아 보면서 늦깎이 공부 좀 하려고요.
(자동 자막의 편리함은 강력합니다!)
KBS 가요무대 진행으로 익숙한 '김동건' 아저씨가 진행하는 '비밀의 커튼'이란 방송이 있었습니다.
스튜디오 무대의 커튼 뒤, 의자에 앉아 실루엣만 보이는 분의 직업 같은 걸 스무고개로 맞추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크리스탈 플라워'가 답이었던, 한 여성분의 직업, 무엇을 만드는 분인지 맞추는 방송을 잊지 못합니다.
결국 답은 못 맞췄고 비밀의 커튼을 걷고 등장한 여성분은 자신의 작업물, '크리스탈 꽃'을 들고 나옵니다.
"무슨 재료로 어떻게 만드는 건가요?"
지극히 정상적인 패널의 질문에,
"비밀입니다."
"..."
그 제로스 누나 이모님이 20세기에 2중 장막으로 가렸던 최종 숙제를 21세기가 되어 하비재팬에서 그 답을 얻었습니다.
대단한 연출이 아닐 수 없는 멋진 영상과 안무의 향연입니다.
'라이자 미넬리 Liza May Minnelli'가 나오는 영화 '캬바레 'cabaret (1972)'를 AFKN에서 잠깐 만나고, 베스트셀러 극장, '낙지같은 여자'의 제목과 송옥숙 배우님의 리즈 시절 모습에서 기대(?)했던 뭔지 모를 호기심으로 토요일 낮에 혼자 맘 편하게 봤던 기억에 어른의 세상을 옅보면서 자동 생성되는 시각적 상상력이 천재를 만나면 봉준호 같은 분이 나오는거겠죠.
영화 '어린왕자 (1974)'에서 인상적인 뱀 역할을 맡은 이 영화의 감독 '밥 포시 Bob Fosse'를 처음 보면서 그전까지는 좀처럼 가까워지기 어려울 정도로 어색해서 싫어하기까지 했던, 과장된 몸동작으로 캐릭터를 표현하는 실사 연기와 벽을 허물었던 기억이 됩니다.
중독까지는 아니라도 뭔가에 빠질 수 있다는 건 좋습니다
오블완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정리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게 거의 반을 향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지, 하고 싶은 게 없겠냐 싶다가도 정작 "적을 게 없으면 어떡하나?" 살짝 고민했는데요.
역시 기우였습니다,
두 이웃분께 감사드려요~~~
'오블완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y 11] 모형은 타임머신, 유통기한은 내 일생까지만 허락함 - 21 Shades of My Faves (1) | 2024.11.18 |
---|---|
[Day 10] 핼리혜성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복고란 이름의 기억, 이야기 - 21 Shades of My Faves (1) | 2024.11.17 |
[Day 8] 샤프심 마지막 1mm까지, 0.5mm 샤프 개조의 최종 진화형 - 21 Shades of My Faves (3) | 2024.11.15 |
[Day 7] 꿈의 해석과 오후의 올가미 - 21 Shades of My Faves (1) | 2024.11.14 |
[Day 6] 월간 뉴타입, 취미의 최종 진화형으로 가는 길목 - 21 Shades of My Faves (3) | 2024.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