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대 초, 올림픽 이후 세계화를 노래 부르며 뭔가 세련되어 보이는 듯한 외례 용어, 이를테면 디자인이 어떻고, 마케팅이니 브랜딩이란 용어가 상용 일반명사처럼 일반명사 맞는데?! 빈번하게 쓰이기 시작했던 시기로 기억합니다.
세계화를 너무 열심히 외치는 한편으로는 대중가요의 무분별한 영어 가사에 심히 문제가 있다며 무려 저녁 뉴스에 백지영 누님을 통해 신승훈 형님 노래를 소환하는, 이도 저도 아니기도 하고, 맞는 얘기 같기도 했던 아차 싶은 Ahn Charles 어법? 시절입니다.
년도도 날짜도 계절마저 생각 안 나는 어느 날, 집에 혼자였어서 이번에도 우연히 TV를 보는데 브랜딩 관련 전문가와 게스트 몇 분이 나와 얘기를 나눕니다.

무슨무슨 회사의 오래된 제품에 새로운 이름과 이미지로 컨설팅하는 데 억대의 비용이 든다는 이야기에 나이 지긋한 게스트들과 진행자가 대본대로? 놀라 주십니다.
(종가집, 태양초, 같이 기존 상표를 세련되게 업그레이드하면서 경쟁 업체에서도 유사 신생 브랜드를 하나둘씩 '전사적 대규모 라벨 갈이?'를 하던 때였습니다.)
주제로 보나 내용의 밀도로 보나 존경하는 손혜원 고모님 급 화제의 주인공이었을 텐데 누구였는지는 기억에 저언혀 없지만, 프로그램 중간 진행자는 패널을 향해 역시 대본에 있는 제안을 합니다,
'그럼 여러분들도 한 번 음료수 이름을 지어볼까요?'

대학 교수님 같은 인상에 나이 지긋한 패널 한 분이 짧은 단어가 아닌 한 문장을 말씀하시고는,
'이름이 너무 길죠?'
그러자 그 브랜딩 전문가분께서는,
'아니에요, 오히려 시적인 감성의 브랜드라 더 좋은걸요. 일본의 한 맥주회사에서 만든 브랜드 중에는 '겨울이야기'라는 상표가 있어요.'
이렇게 제겐 '겨울이야기' 하면 떠오르는 게 1988년 10월에 출시했다는 삿포로 맥주의 계절 한정상품과, 1987년도 일본 입시를 배경으로 연재를 시작한, 우리나라에는 1993년 '도서출판 오존'이 처음으로 소개했던 만화, '겨울이야기 冬物語 (ふゆものがたり)'가 있습니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희곡 'The Winter's Tale'도 '겨울이야기'로 번역 되고, 삿포로 맥주의 그것은 여기서 따왔다고 하죠.

대학 네 곳을 떨어진 종범(森川 光 / もりかわ ひかる)은 초등학생도 붙을 거라는 동생 피셜의 가지 대학마저 낙방하는 악몽에서 벌떡 일어나고... 이렇게 만화는 주인공의 방에서 시작합니다.
이미 대학 입시에 성공한 여자 친구, 윤정(和美 / かずみ)이 종범의 마지노선, 가지대학의 합격 발표를 확인하러 같이 가주려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까지 늦잠을 잔 거죠.
재수생의 필독서 '겨울 이야기'는 이렇게 모니터나 스마트폰이 아닌 합격자 발표 벽보를 확인하러 현장에 가야 했던, 20세기 감성의 만화입니다.

깜찍한 여자 친구는 남친의 다섯 번째 낙방 현장에서 빛의 속도로 떠납니다.
아마 지난 네 번은 힘내라고 응원해주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오늘만큼은 심호흡을 깊게 들이쉬고 와준 거겠죠.
아무튼 이 소녀는 앞으로 단행본 7권 분량으로 나올 종범의 우유부단함에 가장 빠르고 현명?한 탈출구를 택하고...

행복한 미소를 한 윤정의 옆에는 멋진 남자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 같은 스토리의 발란스에 감탄하면서 보게 되는 연출 호흡이 아주 끝내주는 작가님입니다.
현지화한 건물 간판에 이 만화를 발간한 OZON(NOZO?)이 보입니다.

참고로 1993년 3월 14일은 일요일입니다.
3월 14일이 토요일이었던 년도는 1987년, 원래 이 만화를 연재한 시기입니다.
달력인심은 후했던 8, 90년대를 살았어서 저런 소품이 주는 푸근함에 공감하는 아저씨가 되어버렸고, 응답하라 시리즈가 히트한 이유 중 하나가 섬세하게 시대를 담은 미장센의 공이 컸죠.
다만 사거리에 걸려있던 LED 신호등은 옥에 티였지만 말입니다.

일본 만화의 장점?이랄까, 대충 오역이 있어도 큰 스토리의 맥락을 따라가는 데 어려울 게 없습니다.
저는 까다로운 독자도 아니고 말이죠.
대충 그러려니 합니다.

이렇게 종범의 마음을 쏙 빼앗는 1번 히로인을 재수 학원에서 만나게 됩니다.
모형 잡지, 플라스틱 모델 저널을 출간한 오존 출판사에서 1993년 단행본으로 소개한 겨울이야기는 일본과 동일하게 우횡서(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방식)를 그대로 출간한 개념서입니다.
(나중에 대원에서 나온 정발본을 안 산 유일하고 확고한 이유!)
정발임에도 그 대사가 나오는 페이지에서만 왼손은 거들뿐, 대부분 오른손으로 거들어야 했던 슬램덩크와 다른 시작을 보입니다. ㅋㅋㅋ

뭐랄까, 농담 뒤에 추궁하는 심리학 심화단계를 딱 두 컷으로 표현하는 듯한 연출!
1권에서는 최고대(동경대)를 목표로 하는 수강 클래스를 예쁜 하영에 눈이 멀어 같은 수업을 들으며 점점 본인의 한계를 깨닫는 스토리를 담았습니다.
수학 때문에 아깝게 최고대에 낙방한 그녀는 이미 모의고사 전국 1등 수준의 수재입니다.

하영 옆자리에서 내용도 어려운 수업이 귀에 들어올 리 없는 주인공은 저러고 있습니다.
만화 중간중간에 나오는 문구류나 소품, 음식, 시계 등의 묘사가 탁월합니다.
단순히 그림으로써의 묘사가 아닌 대사처럼 읽힙니다.

도서출판 오존에서는 뉴타입에 연재하던 미키모토 하루히코 선생의 마리오네트 제너레이션이나 나가노 마모루 선생의 FSS도 출간합니다.
PM저널이 폐간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이렇게 만화책 몇 가지 타이틀을 내놓았는데, 그중 겨울이야기의 국내 소개는 무척 고마운 경험이기도 합니다.
이 만화책을 읽었던 나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처음 접하는 만화로 겨울이야기를 읽었다면... 뭐 그 나름대로 옛날 감성 빙의해서 재밌게 읽었겠지만 옛날, 90년대 그 나이에 실제 느꼈던 갬성 일부는 없었겠죠.

당시 제가 근본 없이 가진 선입견 중 하나가 일본 만화에는 가족 묘사가 너무 드물다는 거였는데, 나오더라도 집안 어르신들을 우리네 감성과는 다르게 객관화 한 대상 이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남궁란마와 남궁팬더민 사이는 아무리 봐도 상식적인 부자 사이가 아녔고, 강백호가 저러고 학교 다니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얘네 식구는 응원도 안 오고 뭐 하는 걸까?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했죠.
하긴 일본 만화를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에 소개된 만화, 그중에서도 일부만 접한 경험으로 내릴 결론는 아녔죠.
그런 의미에서 겨울이야기에 나오는 종범의 가족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 신선했습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종범은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극적인 반전은 끝까지 없죠.
그나저나 저 샤프, 어디서 봤는데... (찾아볼까?)

집에서도 학원에서도 최고대(동경대)를 목표로 하는 수업에 한계를 실감합니다.
대사에 나온 대로 필기만큼은 열심히 하는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그나저나 저 샤프, 어디선가 진짜 본 기억이 있는데 말이죠... 괜히 신경이가 쓰입니다. ㅎㅎㅎ

그가 직면한 현실의 한계는 최고대(동경대)향 수업뿐만이 아녔습니다.
하영에게는 최고대에 가야 하는 이유, 그녀의 고향 선배이자 연인인 철규(田代 圭一 / たしろ けいいち)가 있었습니다.
철규는 최고대생입니다.

학원 동기들과의 모임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최고대를 다니고 있어서' 최고대(동경대)반 수업을 신청했다는 종범의 말에 하영은 본인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친구라고 여겼으나, 나중에 그 대상이 본인임을 점점 깨닫게 되는 과정을 독자는 즐기게? 됩니다.
이분 만화 보는 재미는 에피소드마다 등장인물이 입고 나오는 옷도 다르고 현장 답사를 한 듯한 장면 묘사의 디테일함이 한 몫합니다.
칼 같은 펜 터치도 경쾌하고요.

오늘부터 누군가의 가방에 스치면맞으면 인연인 겁니다. ㅋ
(모서리에 정통으로 맞았는지 종범의 정수리와 가방에 반창고가...)
히로인 #2, 현화(倉橋 奈緒子 / くらはし なおこ)가 등장합니다.
그녀의 패션과 귀걸이만으로도 뭔가 주변 공기가 변한 느낌입니다.

1권에서 종범이 하영의 옆자리로 접근한다면 2권에서는 현화가 종범의 옆자리로 다가옵니다.
(잘 보면 종범이 앉아있던 테이블 구석자리를, 가던 길을 멈춘 현화가 밀고 들어와서 종범이 앉아있던 자리에 앉습니다. ㅋ 최소 학원 강의실 안에 현화의 지정 짝꿍?은 없어 보입니다.)
연애물이라는 게 이런 인간관계의 흐름과 방향에 관한 얘기인 거죠.
언제 어디로 틀어지는지의 반전으로만 말하자면 사랑의 짝대기만한 게 없었습니다. ㅋ

ㅋㅋㅋ
1권에서 최고대(동경대)반의 수준과 하영의 남친을 보고도 막연하기만 했던 본인의 한계를 잘 나올 리 없는 모의고사 성적이 한 방에 일깨워줬습니다.
이때 확실히 알았어야... 아! 그러면 만화가 끝...
이렇게 2권에서는 새로운 환경, 사립 문과계열 수업으로 변경한 곳에서의 에피소드입니다.

성격은 다르지만 1권에서도 우산을 챙기지 못한 종범에게 하영이 다가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산을 잘 안 챙기는 종범이나 이렇게 가방에 이어 우산마저 치고 들어오는 현화의 성향은 각 캐릭터의 일관성을 묘사하는 다양한 반복의 형태로 연출되어 7권 내내 몰입하게 합니다.
현화의 귀걸이와 깔맞춤 한 손목의 팔찌는 있다가 없다가 하긴 합니다. (안 중요함)

우유부단한 종범에게 계속 말을 거는 현화.
그래도 둘이 발은 맞춰 걷고 있습니다.
나란히 걸을 땐, 특히 길이 젖어있으면 저렇게 걸어야 편하죠.

이 장면!
한 컷 한 컷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듯한 명품 연출을 보면서 작가가 느꼈을 스트레스를 가늠해봅니다.
만화 전개를 위해 허용된 주인공의 답답한 방황이 앞으로 전개되지만, 이게 현실이라면 이 타이밍에 현화에게 바로 올인하는 게 옳습니다.

종범이 어깨를 확인하는 저 장면에 타원형 배경으로인해 진짜 몸을 트는 듯한 착시를 보여줍니다.
만화로만 전달 가능한 정적인 컷 연출만으로도 움직임을 느끼게 하는 똑똑한 연출이 너무 좋죠.
그리고 블리딩 한 현화의 마지막 컷(종범 머릿속의 잔상 효과)도 적절합니다.

빗길 우산 에스코트 이후 현화의 접근이 더 적극적으로 바뀝니다.
어두운 종범에게서 뭘 발견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도 현화가 종범 옆자리로 온 게 맞을 겁니다. ㅎㅎㅎ

いぢめる? 괴롭힐 거야? ㅋㅋㅋ 나중에 보노보노를 알게 되고 뒤늦게 빵 터진 부비 트랩 장면입니다.
영문 흘림체로 보아 나름 손글씨가 깔끔함을 알 수 있는 종범의 노트 한가운데에 명작, 보노보노옹을...
현화의 메롱 컷 바로 위에는 펜으로 종범의 옆구리를 찌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ㅋㅋㅋ
영어수업 중 이미 다음 수학 수업은 땡땡이치고 카사블랑카를 보러 가기로 한 다른 수강생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며 종범을 꼬셔서 나가는 장면에서 하영과 잠깐 부딪칩니다.

삼세판은 국룰을 넘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미덕임을 알고 있는 멋진 현화는 영화를 즐기지 못하는 소심한 종범의 목덜미에 빨대로 음료수를 뿌립니다.
극장을 나온 셋은 콧수염 영화광의 자취방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이어지는 인생 영화 이야기가 끝나고 땡땡이를 친 자책감은 떨쳐버리지 못하는 종범의 걱정이 이어집니다.
동기의 집을 나서고 길을 같이 걸으며 종범은 좋아하는 아이가 목표로 하는 최고대(동경대)를 가려고 최고대 수업을 들었다는 얘기를 현화에게 하죠.

반을 옮기고 수업마저 땡땡이치는 모습이 걱정되었는지 교실에 종범을 찾아온 하영에 사립문과반 클래스가 웅성거리는 중 현화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종범이 말하는 최고대를 가려는 그 아이가 하영임을 직감한 현화는 수업이 끝나자 종범을 데리고 보복 쇼핑을 하죠.
현화가 나오는 장면엔 시부야 109가 반복되는 걸로 보아 근처에 살고 있다는 설정 같습니다.
(저 때는 건물 주위에 전신주가 있었나 봅니다.)

교실에 들러 전화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간 하영의 말에 신경 쓰인 현화는 종범짐꾼을 데리고 쇼핑을 마치고 자취방까지 옵니다. 응? 벌써? 뭐 이렇게 빠르게 진도를...
다음 페이지의 종범의 반응이 완전 웃긴데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그려. (일부러 안 찍은 건 아녜요.)
이미 종범에게 하영은 꿈 깨라는 식으로 현실조언을 했음에도 남은 연재분이 많이 남아있음을 알고 있는 주인공 종범은 우유부단함을 유지합니다.

이런 현실적인 연출에 많은 분들이 좋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들 잠자리에서 어두운 천정을 보고 하루 일과를 영사하는 버릇... 특히 쏠로일 때 많지 않나요?
에반게리온의 에피소드 2의 부제가 '낯선 천장'이죠.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여친이 생기면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던 만화책이기도 했는데, 와이프보다 중학생이 된 제 동생이 먼저 이 만화책을 봤더랬습니다.
나름 만화책이라면 저보다 소양이 깊은 동생이라 만화 영재교육?이랍시고 일찍 접하게 해 줬는데, 나중에 대학생이 되더니 다시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옛날의 그 느낌이 안 나는 게 좀 현실적이지 못하고 답답해. 그래도 재미는 있어.'
라며 뭔가 저보다 더 멋지게 남긴 한 줄 촌평이 기억납니다.
(그나마 옛날에 느낀 그 갬성이 살아있다는 게 중요한 거야.)

신고로 날린 이력으로 이렇게 내용 전달에 제약이 있습니다만, 상상력 증진에 도움된다 여기면 되는 겁니다.
뭐 암튼, 만화 내용은 이전에 카사블랑카를 봤으니 이젠 어른 영화도 보러 왔다는 겁니다.
한 번이 쉽지 두 번이 어렵나! 응?

학원에서 제일 인기 없는 강사 중 한 분인 영어 강사 이야기입니다.
성인 영화를 우연히 같이 보게 된 학원 강사와 수강생은 즐거운! 영화 감상을 마치고 같이 맥주를 마시러갑니다.
장르 구분 없이 모든 영화를 좋아한다는 영어 강사와 영화광, 수염 친구는 서로 쿵짝이 잘 맞아 자연스럽게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고, 미국 현지에서 통하지 않았던 본인의 영어에 쇼크였다는 강사의 에피소드는 그럼에도 그의 강의는 여전히 지루했다고 마무리합니다.

이성의 사생활은 저세상 얘기일 때라 이런 섬세한 연출이 신선했습니다.
자취하는 현화의 모습이 나왔으니 이젠 그녀의 개인사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현화는 종범의 그녀, 하영을 알기 위해 조금씩, 나름 치밀하게 움직이죠.

이 정도면 슬램덩크의 '하아' '하아' 급 긴박한 연출이랄 수 있겠습니다.
현화는 하영에게 종범은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결판을 짓고, 그러니까 하영의 '그(철규)'도 알게 되고 종범에 대한 현화의 마음도 확실하게 전달하고, 심지어 그 장면을 엿듣고 있는(개그 요소) 종범까지 완벽하게 셋의 관계가 정리된 이후의 상황입니다.
둘은 같이 이자카야에서 우연히 만난 현화의 고등학교 동창을 통해 그녀의 집안과 이름만 등장하는 미래의 연적恋敵이 될 서준(高山 淳 / たかやま じゅん)이 언급되고,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 현화가 종범을 집에 데리고 왔음에도 여전히 우유부단한 종범은 집을 나서려 하고, 살짝 취한 상태에 평소와 달리 불안해하는 현화를 종범이 현관에서 잡아주는 장면 되겠습니다.

연애를 많이 해봤다면 남을 의식하며 따라 하진 않았겠죠.
종범에게 고백을 한 현화는 조금은 어색?해 보이는 데이트를 시작합니다.
이 상황이 이대로 쭈욱 해피엔딩으로 이어지기에는 아직 2권이라...

현화와 달리 이미 입도 맞춘 사이 치고는 참 어색해하는 종범입니다.
아직 현화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스토리의 발란스는 하영을 향하고, 그녀는 철규와의 관계가 삐그덕 거립니다.

슬슬 입시가 다가오는 하영과 철규 사이엔 어른들의 사정(철규의 욕구불만?)으로 불협화음이 생깁니다.
연애와 수험생활을 병행하는 게 고달파 보이는 청춘의 모습이지만, 읽던 당시엔 막연하게 부러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화기는 스토리 전개에 중요한 소품인 겁니다.

고향으로 가는 하영의 가방을 들어주는 상냥한 '친구' 종범.
철규와의 사이가 냉랭해지고,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에는 현화의 집에서 친구들과 파티가 있음에도 종범은 고향으로 떠나는 하영을 배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영은 시험, 포기하지 말고 돌아오라는 말을 철규가 아닌 종범에게 듣죠.

요즘 방영하는 일드 영상에 간판이나 각종 문구의 현지화 기술은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메뉴판을 들고 움직이는 실사 영상에서 한글이 전혀 요동치거나 튀는 게 안 보일 정도입니다.
시험이 다가와도 돌아오지 않는 하영의 집을 매일같이 서성거리다 하영이 고향에서 돌아온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날, 집 앞에서 마주한 것은 추위에 기다리고 있던 종범이었고, 최고대(동경대) 시험을 보러 가는 날 역시 여전히 철규가 아닌 종범의 응원을 받습니다.
체력이 다 할 때까지 하영을 응원하던 종범은 결국 감기에 걸리고, 정작 본인은 3수생인 현화(종범보다 1년 연상입니다)의 보살핌을 받으며 시험을 치릅니다.

시부야에 홀로 살 집을 지원해 줄 정도로 잘 사는 의사 집안에 한큐에 의대에 들어간 형제들과 달리 삼수 끝에 대학에 합격한 현화는 언니 오빠와의 비교, 그리고 의대 입성을 바라는 스트레스로 상처받는 캐릭터였습니다.
합격해도 연락 없을 딸의 성격을 잘 알고 발표를 직접 확인하러 온 아빠를 만나고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혼자 괴로워합니다.
이 와중에 종범이 녀석은 현화의 고민도 모르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죠. ㅎ
최고대(동경대) 합격자 발표일, 함께 가주려 하는 철규의 전화에 하영은 혼자 발표장에 가겠다고 하고, 낙방을 확인한 순간 때마침 내리는 비에 철규가 든 우산이 다가옵니다. (but 관계 회복의 실마리)

여러분은 이미 익숙해야 하는 그 잡지를 보고 계십니다.
성년의 날 포스팅에 인용했던 그 잡지.
최고대(동경대) 입성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하영을 걱정하는 여전히 답답한 종범.

아니, 이 와중에 왜 현화에게 하영이 있는 곳에 간다고 하냐고요.
현화는 집에서 지원해주던 빌라를 나와 따로 방을 구한 상태입니다.
물론 종범도 같이 부동산을 알아보러 다녔고 그 와중에도 종범의 시선은 스탠드에 진열된 하영이 사는 곳 여행상품 팸플릿에 눈길을 줬죠. (이걸 그냥...ㅂㄷㅂㄷ)

종범과 친구들이 이삿짐을 옳긴 직후라 방 몰골이 요렇습니다.
생각 없는 종범은 하영의 편지에 적힌 주소지를 향해 최고대를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자 무작정 떠납니다.
그리고 친구를 만나느라 귀가가 늦는 하영 대신 하영의 어머님과 저녁을 먹고, 목욕!도 하고,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아버지의 술상마저 겸상합니다.
(그런데 하영의 부모님, 비참?하게도 종범을 알고 있습니다.)

반전 매력을 발산하는 하영의 집에서는 이런 일상의 모습으로 만납니다.
(종범의 시선이 나의 그것이 되는 싱크로율 100%의 만화책만 가능한 즐거움)
단추 위치로 보아 철규의 셔츠가 아닐까 싶은...
(치약, 삼키기라도 한 거냐? 이 작가분의 개그 컷은 뭐 그냥... [-_-]=b 리스펙트!!!)
대본에 정해진 궤도를 따라 순수하게 시험 비행하는 바보 종범은 타지에서도 독자를 향한 고구마 배달에 멈춤이 없습니다.

하영의 마음을 확인해본답시고 '기다릴까?' 하는 종범이지만, 하영은 기다리지 말라고 '확실하게' 말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종범의 빈자리는 '지금' 철규가 하영의 곁에 있다는 거죠.
(철규는 하영의 고향, 고등학교 선배라는 예상 가능한 설정이고, 오늘부터 둘은 동거를...)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의 옆자리에 앉은 신사는 기내 흡연을 이렇게... 생뚱맞게 넣은 장면은 아닐 거고 아마도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저 지시등의 싸인에 담배를 입에 물은 아저씨의 행동은 이제 철규에게 어른이 되어도 좋다는 하영의 결심을 대변하는 신호로 보입니다.
(종범은 한없이 어둡다 못해 다음 페이지에선 창문을 향해 눈물을 흘립니다. 하이고오...)

하영의 고향에서 고구마 1톤을 선사한 종범은 하영을 닮은 현화의 룸메, 한미연으로 인해 미련의 잔상이 잠깐 이어집니다.
3수 끝에 합격한 대학 진학을 포기한 현화는 아직 일을 구하는 중이지요.
경제적으로 지원이 끊긴 듯한 현화의 위기에 대비되는 종범은 합격한 가지대에 만족을 못하고 현화를 따라 3수를 고민하다 휴학을 결정합니다.

이 장면으로 두 살 터울임을 알 수 있는 종범의 동생은 공부와 담을 쌓았지만, 생활력, 독립심이 무척이나 강한 친구입니다.
명지대(慶應게이오 의학부)를 합격하고도 입학을 포기한 현화와 대비되는 두 형제입니다.
애정 전선이 조금 안정적으로 보이는 시점에 재수에서 삼수로 넘어가는 위기로 스토리가 이어지고 4권이 끝납니다.

현화의 동창이 말한 준의 등장.
종범의 동생과 외모도 살짝 닮아 보이는 서준은 잡지사에서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나이도 동갑내기인 현역 고 3입니다.
이 작품은 스토리상 각 인물과 관계의 발란스가 참 잘 맞습니다.

우연히 일자리에서 다시 만난 현화에 진심인 준은 종범과 다릅니다.
현화가 쓰고 있는 헬멧처럼 뭔가 미리 준비된 느낌에 흔들리지도 않죠.
캐릭터의 대비는 클수록 극적이니까요.

그런데 바로 다음 컷에서 침 흘리며 맛이 가는 반전 연출. ㅋ
강력한 연적의 등장에 우리의 주인공은 왜 휴학을 했을까 싶지만, 또 한 명의 히로인, 하영도 삼수를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5권에서는 종범, 하영 그리고 서준의 입시와 다시 꼬이는 연애의 시작을 알립니다.

삼수를 앞둔 아들과 형을 바라보는 식구의 시선을 잘 표현한 장면입니다.
가족을 담은 저 앵글은 현재 분위기의 중압감을 적절하게 전달합니다.
손 위치마저 섬세하게 연출한 장면은 네 캐릭터의 고민을 훌륭하게 담고 있습니다.

엄마와 동생, 그리고 아버지가 각자 한 마디씩 남기고 자리를 떠나지만, 빈자리를 꽉꽉 채우는 대사는 현화의 가족관계와 사뭇 대비가 됩니다.
아마 현화도 이런 종범의 가족에 더 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재수생활 중간에, 그리고 시험 중에 감기에 걸린 종범을 간호하러도 오고 처음에 등장했던 여자 친구처럼 합격 발표 현장도 같이 했어서 다들 현화와는 구면입니다.

이미 성인인 철규와 재수생 신분인 하영 사이의 갈등이 입학 불발로 커졌을 시점에 종범에게 기대었던 하영에게 화가 난 현화의 일격!
옛날 드라마에는 없으면 허전했나 싶을 정도로 손찌검하는 장면이 클리셰처럼 있었는데...
언제 누가 빰을 때릴까 적절한? 타이밍을 예상하면서 드라마를 즐기던 악취미는 시류를 따라 옛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하영이 고향으로 와달라고 종범을 부른 것도 아니고, 3수를 결심하고 돌아온 하영은 그저 친구로 종범을 만났지만, 현화 입장에서는 화가 날 법도 합니다.
만, 답답한 건 종범의 태도입니다.
그렇다고 독자의 연애가 현화의 표현대로 내성적이고, 어둡고, 우유부단하고, 점잖고, 사람이나 가축한테도 무해한 ㅋㅋㅋ 종범의 순수함을 지닌 것은 아니라서 미워하기 어려운 캐릭터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주인공 값은 하는 캐릭터라 이 멋진 두 여성이 종범으로 인해 이런 장면을 이끌어내고 맙니다.
종범을 두고도 멋진 여성 둘이 갈등을 일으키는데 나는... ㅂㄷㅂㄷ (저 당시 나의 마음)
하영을 잊지 못하는 종범으로 인해 서준에게 마음이 기울 수도 있는 현화의 입장에서, 친구 이상은 아닌 상냥하기만 한 종범에게 위로받기 위해 철규가 아닌 종범에게 다가간 하영이 미웠을 겁니다.
종범을 너무 잘 아는 현화의 진심이 담긴 장면인데 하필 저 장소에 갈 땐 준이 또 같이 있었고 저 장면을 엿봅니다.
현화와 하영 사이에서 본인의 자리를 잃은 듯 보이는 종범에겐 이제 두 권이 남았습니다.

2권 부터 등장한 같은 학원을 다녔던 그 영화광의 부탁으로 모의고사 감독을 맡은 종범은 운에 답을 맞긴 수험생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고 3을 투영해봅니다.
자 이제 단행본은 두 권이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는 끝에서 두 번째 책이므로 우리의 종범이 정신을 차렸을... 리가 없겠죠?

시험 감독을 마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다시 하영과 최고대(동경대)를 소환하고 심지어 술김에 다시 최고대를 가겠다고 외칩니다.
때마침 친구가 부른 현화가 도착할 즈음 이런 종범의 외침을 듣고 맙니다. (쓴웃음)
숙취가 깼으면 현실을 바라볼 것 같은 주인공은 서점에 들러 최고대를 목표로 하는 수험서마저 결제해버리죠. (아이고오)

우연히 길에서 만난 하영과 차를 마시면서 막 서점에서 결제를 마친 최고대 수험서를 들키고, 종범은 다시 도전해 보려고 한다고 합니다.이미 현화의 손맛!을 경험한 하영은 철규와 같이 동거살고 있다는 현실 고백으로 못을 박아주죠.
얻을 땐 같이 있었던 현화의 자취방을 찾아간 종범은 미리 알리지 않고 이사를 한 현화의 빈자리에서 편지를 발견합니다.

철규와의 동거를 부모님께 들켜버린 하영은 고향으로 강제 소환하게 될 뻔 하지만, 우연이라기에는 하영의 나와바리임을 알면서도 주위를 맴돌던 종범은 하영의 어머니를 만나고 철규가 하영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역설해 줍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말합니다, '하영이한테 같은 말 들었어요.'라고.
그리고 당근 마켓이 없던 20세기를 사는 종범은 최고대(동경대) 수험서를 '이제야' 버립니다.

종범은 우연히 만난 준과 함께 현화의 룸메, 미연을 찾아갔으나 현화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미연은 나중에 준에게만 따로 어설픈 좌표를 찍어주고, 누구와는 다른 준은 현화의 활동반경에서 망원경을 들고 한 달을 주구장창 현화만 찾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을 가상히 여긴 작가님은 둘을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해 주시고 함께 밥을 먹죠.

현역 고3이 밥값을 계산하겠다며 꺼낸 지갑에서 준이 몰래 찍고 현상해서 인화했을 현화의 사진을 발견합니다.
경험상 지갑에 사진은 들키기는 쉬우나 저렇게 떨어뜨리기는 쉽지 않지만, 그건 제 지갑이 작아서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뭐 암튼 애인 입장에서는 유쾌한 상황이죠.

숨긴 마음은 이렇게 극적으로 들켜야 하는 겁니다.
역시 공을 누가 어디로 어떻게 던졌느냐가 중요한 듯...
이렇게 준이 던진 공을 현화는 얼떨결에 받아줍니다.
아, 하라 히데노리 작가는 야구만화도 그렸습니다.
'슬램펑키스트라이크'라고 들어는 보셨는지... 원래 제목은 '저스트 미트(ジャストミート)'인데... 정신없이 웃겨주는 개그 야구 만화가 있습니다.
ㅎㅎㅎ

길에서 우연히 만난 현화와 준의 다정한 모습에 던질 대사의 지분을 잃은 종범은 표정연기밖에 안 남은 겁니다.
아는 척마저 고통스러운 삼수생의 연적(恋敵/こいがたき)은 두 살이나 어린 현역 고등학생입니다.
심지어 일머리뿐 아니라 공부머리도 출중한 캐릭터죠.

만화책을 너무 재밌게 읽다 보니 다음 권이 궁금해서 출판사에 전화를 했던 첫 책입니다.
이미 우편으로 PM저널을 받아본 이력이 있어서 다음 권 언제 나와요를 물어보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OZON 로고가 큼지막하고 고급스럽게 인쇄된 양질의 대봉투에 수령인 정보가 정성스럽게 여자 글씨로 적혀있어서 꽤나 오래 보관했는데, 버리고 없어요.
(손글씨가 이쁜 남자 직원이 썼을 거라 여기기로 했죠. ㅎ)

명지대(慶應 게이오 의학부)를 합격할 정도로 수학만큼은 하영보다 한 수 위인 현화의 3수 이력은 준을 만나자 케미가 돋보입니다.
누가 봐도 둘은 잘 어울리죠.
그러면서도 종범을 향한 미련이 현화의 행복이 되기를 바라면서 저는 또 책장을 넘깁니다.
욕하면서도 계속하는 게임 같은 관계랄까...

바이트를 하면서 준의 공부를 봐주는 현화의 모습에서 여유마저 느껴지는 게 독자의 착각(의미부여)인지 작가의 실력인지 싶네요.
앞만 바라보고 재수를 하다 살짝 느슨해진 삼수를 하면서 만난 종범이 첫사랑이 아녔을까 혼자 생각해 보는 대목입니다.
합격을 하고도 입학을 포기한 현화는 학생 신분인 남친의 대학생활 4년을 더 기다려야... 아, 이 친구들, 군대 필수 옵션이 없군요.

현화와 준이 저녁 메뉴 고르느라 샤부샤부 하고 있는 반면, 종범네 저녁 테이블은 우편으로 온 성적표로 부모님의 근심을 사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밥이 넘어가냐 이 녀석아?... 종범은 결국 먹던 밥을 반도 못 먹고 일어납니다.
좀처럼 3수를 하면서도 진전이 보이지 않는 성적에 가족도, 독자도, 저도 힘들어하자 종범은 친한 친구, 영덕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가지만...
영덕마저 독자를 대신해서 종범의 공부도, 하영에 대한 미련도, 현화에 대한 태도 모두 질책합니다.

서점에서 우연히 스타일리트로 일하고 있는 현화를 만나고 그녀에게 받은 명함에 적힌 사무실 주소를 확인하는 순간 현화가 골라준 수험서를 찾은 준이 나타나고 둘은 하영을 남겨놓고 다정하게 자리를 떠납니다.
하영에게 사실 종범은 상냥한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이지만, 그의 오염되지 않은 마음만은 가상했기에 종범의 집을 찾아가서 본인이 방황할 때 종범에게 받은 응원을 무지개 반사해주고 갑니다.
이렇게 마지막 7권을 남겨놓고 종범은 절망의 바닥, 끝의 끝을 터치 다운하고 하영의 방문으로 6권이 끝납니다.

6권에서 하영의 응원에 힘입었는지 오래간만에 학원에 간 종범은 강의실에서 준을 만납니다.
위 장면은 만날 때마다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로 준을 피하는 종범에게 준이 던지는 대사입니다.
그런데 입이 안 보이네... 복화술? ㅋ

자자 이제 마지막 권이니까 종범을 향해 원기옥을 모아줘야 한다고요.현화의 손맛에 종범을 이해하기 시작한 하영은 6권에서 받은 명함 주소를 찾아가서 현화를 호출합니다.
폐인이 되어가고 있는 종범에게 현화가 필요하다고 도와달라고 하지만, 현화의 마음은 이미 준에게 가있고 계속 시계를 보다가 자리를 떠나고 간 곳은...

하영의 부탁을 뒤로하고 달려간 곳은 준과의 데이트로, 이미 준은 한참을 기다렸나 봅니다.
바이트로 시작한 스타일리스트 일에 까탈스러운 고객사를 만나 힘들어하면서도 오기가 생기면서 일의 즐거움과 매력을 하나둘씩 알아가는 현화입니다.
그리고 우리 작가님은 급기야 현화를 멀리 미쿡으로 출장을 보내버립니다.

종범을 진심으로 걱정한 하영은 현화의 손맛 때문이 아니라 종범에게 현화를 찾아가라며 명함을 전해줍니다.
아마도 사무실을 통해 전해 들었을 현화의 출장 일정을 알았는지 김포 국제공항으로 찾아가죠.
어우, 왜 거긴 가서 또 왜 우는 거야?!! ㅋㅋㅋ

출국하는 애인 찾아 공항 가는 클리셰는 어떻게 갔는지, 가서 무슨 대사를 했는지 등은 대충 생략해도 되는 만화만의 장점을 잘 살렸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준이 에스코트했다면 어땠을까 또 쓸데없는 상상을 했습니다만.
자유의 여신상 하면 김성모 화백의 미국 LA짤이 자동 출력되는 인터넷의 부작용... 은 뒤로하고 현화는 예정대로 미국으로 날아갑니다.

무사히 미국에 도착한 현화.
출장지에서 한방을 쓰는 동료와 짐을 풀며 일정을 챙기던 중 종범의 얘기가 나옵니다.
양다리면 준을 달라며 놀리는 룸메의 말에 애써 종범을 잊으려고 하죠.

라디오 방송 녹음에 일가견이 생기기 시작한 4학년 이후로 KBS 3!!! 교육방송 라디오 청취록 작성 방학숙제는 항상 탑이었습니다.
준처럼 똑똑하진 않았지만, 종범의 필기처럼 꾸준했어서 녹음한 방송을 토씨 하나 안 빼고 받아 적은 덕분이었죠.
(사실은 청취록 작성해오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
와이프랑 연애 시절 카세트로 음악을 같이 들을 수 있던 건 다행이다 싶은 게 쫌만 늦었어도? MP3 시대로 넘어갈 뻔했습니다.
아... 제 개인 얘깁니다.

때마침 준이 챙겨준 카세트를 이어폰으로 듣는데 시선은 준을 향하지만...
조용팔 작사 송하이 작곡의 노래를 들으며 갑자기 종범이 스며듭니다.
제가 처음으로 산 CD는 비틀즈의 리볼버 앨범이랑 Harry Connick Jr. 의 20 였습니다.
(두 장을 같이 샀습니다.)

저 시계 기준 뉴욕시간이라면 서울은 낮 2시 45분입니다.
그리고 바로 준에게 국제전화를 겁니다.
만화니까 뭐 하루 종일 걸었다고 해도 상황 설정만 잘 설계하면 설득되는 거죠. ㅎ

대단한 내용이 아닌 통화라 더 현실 공감되는 장면입니다.
자고로 수화기를 탱탱하게 땡겨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게 전화기의 사명인 거죠.
심지어 추억의 다이얼식 전화기입니다.

좀처럼 잠을 청하기 어려운 심리상태인 현화는 준과의 통화를 마치고 종범과 상상 이별을 고하려 합니다만...
이 만화를 접한 1993년은 우리나라의 순정만화잡지 윙크가 창간한 해이기도 합니다.
90년대 언젠가는 윤상 아저씨 라디오 방송에 황미나 선생님이 나와서 서로 낄낄거리며 아트롹도 틀어주던 시절이죠.

현장이 아니고서는 알기 어려운 이런 업계 특성이 담긴 변수를 드라마 등을 통해 접하면 해당 직군에 대한 환상이 생기곤 했죠.
볼 수 있으면 챙겨보던 프로가 EBS의 직업의 세계였는데,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건 여전히 홈쇼핑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김성일 스타일리스트분이 나온 회차입니다.
이후 다양한 직업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에 '나루니와북스 なるにはBOOKS'에서 나온 '완구 기획자가 되는 법 おもちゃクリエータになるには'을 사보기도 했습니다.

여객기 때문에 중단된 촬영.
공항에서 종범이 남긴 잔상은 출장지에서도 계속되고.
디지털 시대에 포토샵이 필수인 요즘이라면 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나 또 쓸데없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기특하게도 타국 체류가 길어지고 있는 현화에게 보낼 소포를 싸 들고 친구와 함께 현화가 일하는 사무실에 들른 준은 먼저 귀국한 현화의 동료를 만나고, 현화는 좀 더 미국에 머물다 돌아올 거라는 얘기에 같이 간 친구가 내뱉은 대사가 저 모양입니다... ㅋㅋㅋ
(토르소 색깔을 보고 친 맨트라면, 순발력 좋은 친구의 주둥이에 합격 목걸이를...)
머플러를 놓고 온 준이 다시 사무실에 올라가서는 현화의 동료 둘이 나누는 대화를 또 우연히? 듣게 됩니다.
현화가 출국하던 날, 공항에 왔던 어딘가 어둡고, 멍하고, 비실... 누가 들어도 종범이 공항에 왔었다는 얘기죠. ㅎ

종범에게 국제 전화를 건 현화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힘없는 종범의 목소리를 듣고는 후회를 하면서 전화를 안 받은 준을 탓합니다.
그리고 바로 울리는 호텔 전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준이었습니다.
현화 목소리를 들으려 LA에 있는 모든 호텔에 전화를 걸 요량이었던 준의 노력이 통했고, 조금 전 현화의 전화를 준이 못 받은 이유였던 거죠.

화이트칠을 깜빡했는지 달력이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시험을 보는 날 아침 철규랑 함께 살고 있는 하영의 모습입니다.
바이트를 하는 철규는 하영이를 배웅해 주지 못하지만, 3수생의 여유인지 더 이상 둘 사이에 이런 사소한 일로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지난해는 종범이 챙겨준 걸 떠올리면 철규란 남자도 하영의 입시 당일은 안 챙기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시험 보러 가는 지하철에서 준을 만납니다.
최고대(동경대)만을 목표로 하는 하영과 달리 준에게 최고대는 그저 테스트일 뿐입니다.
현화에 대한 변함없는 준의 자신감을 본 하영은 종범에게 준 명함이 효과가 없었나 의심을 합니다.

준의 매력은 2년 연속 시험 당일 배웅도 안 해준 하영의 남자 친구, 철규의 빈자리를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정작 본인은 첫 시험임에도 학교에 도착해서는 빠이팅 넘치는 씩씩함으로 하영의 긴장도 풀어주죠.
준은 본인의 행운을 가져다주는 마스코트인 연필깎이를 오늘이 본 시합인 하영에게 양보합니다.

시험 중간에 저 두 사람 떠올릴 여유가...
종범을 위해 현화를 설득하던 하영마저 조금씩 준의 매력을 하나둘씩 발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현화의 명지대(慶應게이오)가 목표지만 테스트 삼아 치른 최고대 센터시험에서 자신감을 얻은 준의 표정이 과하게 밝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지하철 안에서 하영에게 연필깎이를 돌려받은 준은 다음 명지대(慶應게이오) 시험에 합격하고 현화의 귀국길을 멋지게 마중 나가는 백일몽을 꿉니다.
현화의 사무실에서 우연히 들은 공항을 찾아간 종범의 얘기에 속은 쓰리겠으나, 왠지 시험에 자신감이 넘칩니다.
그리고 환승역에서 둘은 헤어지고.

아슬아슬하게 갈아 탄 지하철 안에서 안도의 표정을 짓는 하영.
그리고...
하영의 눈앞에는...

하영은 갈아탄 지하철 안에서 현화를 목격합니다.
종범이 눈에 밟혔던 현화는 마음의 결심이 있었는지 귀국을 하고, 이를 눈치챘을 리 없는 하영은 든든하고 다정한 준을 떠올리며 준과의 만남을 응원하고 또 안부도 전합니다.
하지만 현화의 답은 여엉 밍기적 거리죠.
(종범과 준 사이에 고민으로 늦어진 귀국이었기에 현화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한 상태였고, 사진에는 없지만 의류 매장에서 쇼핑을하던 중 종범에 맞을듯한 남성 M 사이즈가 걸린 매대를 서성거리는 디테일한 연출도 감동을 줍니다.)

수험기간임에도 현화에 진심인 준은 꾸준히 확인하던 사무실을 통해 현화의 귀국 사실을 듣고, 마침 현화는 준에게 건 전화가 통화 중입니다.
사무실과의 통화를 마친 준은 역시나 현화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현화의 집으로 가서 기다리기로 합니다.
현화 역시 준에게 다시 전화를 걸지만 밖에 나가고 집에 없다는 말이 돌아옵니다.
(미국 출장 중에도 그랬고 이렇게 둘 사이의 전화 통화는 스파게티처럼 꼬여있습니다.)

눈 오는 추운 날, 무작정 꽃 한 다발을 사 들고 현화의 집 앞에서 기다리던 준은 결국 현화를 만나고, 집 안으로 들어와 커피를 마시며 한기와 어색함을 녹입니다.
평소의 파이팅이 안 느껴지는 둘 사이의 대화에 준만 신나있고 하영의 반응은 역시 뭔가 어색함이 느겨집니다.
현화는 하려던 말은 못 전하고 집을 나서는 준에게 우산을(만) 챙겨줍니다.

현화가 챙겨준 우산을 가지고 나간 준은 에스코트 없이 짧아진 애정의 거리가 신경에 쓰였는지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와 계속 있어달라고 합니다. 합격할 테니까 옆에 있어달라고.
(고놈 촉도 좋으네.)
하지만 현화는 집을 나선 준의 뒷모습을 향해 이별을 고하고, 준은 우산을 거부하고 현화에게 쥐어주며 발길을 돌립니다.
현화를 찾으려 한 달이나 찾으러 다니던 거나, 눈 내리는 겨울밤 함박눈 맞아가며 집으로 찾아간 거 하며, 니가 있는 곳을 향해 합격할 테니 기다려달라는 메시지 등, 현화를 향한 준의 행동이나 대사는 하영에게 했던 준범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을 정리한 현화는 종범에게 갑니다.
소심한 종범은 특유의 어두움으로 슬슬 피하죠.
그리고 지난해에도 그랬듯이 종범의 수험 일정을 옆에서 챙겨주려 합니다.

우선 1990년이 맞고요 ㅎ, 그냥 처음부터 원본의 날짜로 출간하는 게 좋았겠으나 조금이라도 동시대를 배경으로 공유하고 싶어하는 편집자의 고뇌도 공감됩니다.
현화에게 의지했던 자신의 과거에 혼자 노력해 보겠다는 종범에게 내심 기특해하면서도 살짝 짜증을 내면서 합격하면 연락하라며 현화는 전화번호를 건네었으나, 음지, 양지, 일화대 결과 발표에 연락이 없어 답답해하는 현화는 식당을 운영하는 종범의 친구, 영덕에게 마지막 보람대 발표장을 대신 가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대자보에 종범의 수험번호는 안보이죠.

풀이 죽어있는 종범은 자리를 떠나고 이제 막 도착한 영덕이 추가 합격자는 따로 대자보가 있음을 확인했을 땐 종범과 동선이 꼬이자 현명street-smart하게도 종범의 집으로 갑니다.
현화에게 전화는 못 걸고 우선 집에는 알리려고 건 공중전화 너머로 영덕이 외칩니다.
'너 삼수생 맞냐? 추가합격 한 번 더 확인하고 와!'
(일본의 수험 제도를 모르던 때라 학교마다 따로 보나? 하며 신기해했던 기억도 납니다.)

네 곳 모두 떨어지면 끝인가 싶었던 종범은 현화에게 전화를 겁니다.
사실 현화는 준이 본인 때문에 행여 시험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은 노파심에 명지대(慶應게이오) 시험장에 몰래 가보기도 했죠.
그리고 합격자 발표날 역시 가판대에서 파는 명지대 합격자 리스트에서 준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하영도 3수의 끝은 동거의 힘!!!으로 합격입니다
뭐 이렇게 하나둘씩 인생의 큰 허들 하나를 넘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옆자리엔 변함없이 철규가 있습니다.

추가 합격이라고는 하지만 보결이라 입학을 포기하는 결원이 생겨야 최종 합격인 거라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뭐 그래도 결과는 합격이겠지만, 친구들이 미리 날짜를 잡고 마련해준 파티 날, 드디어 합격 통지서를 들고 종범이 나타납니다.
성경에 다행이란 표현이 800번 언급된다던 긍정 전도사 '시골 소녀 폴리아나'라는 만화가 생각납니다.
(제가 좀 사고의 흐름이 산만한 편입니다.)

현화와의 데이트약속으로 기다리는 중 길에서 준을 만납니다.
명지대(慶應게이오)에 붙었지만 현화가 그랬듯 지원하지 않았다는 준은 테스트 삼아 본 최고대(동경대) 센터 시험에 덜컥 합격해 버리고 그냥 그대로 본고사까지 패스합니다. (행운의 마스코트, 연필깎이 없이도 될 놈 될)
...
그랬답니다, 만화잖아요, 만화니까 그럴 수 있어요.

종범은 이 와중에 '나도 싫어!' 라니... ㅋㅋㅋ
포스팅하면서 찾아본 자료에는 이 만화, 실사 영화도 있다네요.
1989년에 나왔다고...

사회인 2년 차인 현화와의 데이트, 식사를 마치고는 특별한 거 없이 그냥 아무 데로 향합니다.
영화를 보기로 했지만 잔업으로 피곤한 현화를 배려해서 공원 벤치에 자리잡아 현화를 앉히고 종범은 음료수를 사 옵니다.
준의 근황을 듣고 온 터라 현화에 대한 미안함이 증폭되었을 종범은 좀 더 어른스럽게 대사를 건넵니다.

잠 깨라고 사 왔을 캔 커피의 효능은 타키온급이시고...
캔 커피로 분위기 전환한 종범은 어디라도 가자고 하지만, 현화는 좋은 날씨를 핑계 삼아 산책을 청합니다.
그리고 우연... 이라기엔 의도한 듯 둘이 만난 입시 학원가로 발길이 닿죠.

ㅋㅋㅋ
첫인상 한 번 더 소환해주시고.
현화는 종범의 어디가 좋았을까요...

현화의 시선으로 보면 집안 어른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한 방황의 3수여서 나올만한 대사입니다.
지금은 사회인이 되었고, 대학생이 된 남친은 정신을 차렸고, 역할에 충실하느라 답답함에 가려졌던 얼굴 잘생김도 안정적으로 돌아오고, 군대도 안 가고... ㅋ
주인공과 달리 앞머리를 단정하게 올린 준은 어찌 보면 종범의 완전체가 아녔을까 싶기도 한 게, 만화 전체를 관통하는 종범의 한마디, '좋아하는 아이(愛)가 있는 곳(대학)'으로 가는 종착역에 가장 쉽게 도달한 인물은 종범도, 하영도 아닌 준이었고, 현화를 잃고 선택한 곳은 심지어 최고대(동경대)입니다.

일 년 빨리 왔어도 되는 둘 사이의 해피 앤딩은 종범과 하영의 3수와 현화의 자아독립을 위한 일 년이 지나서야 겨우 도착했습니다.
아무것도 못 되었다는 현화의 말에 종범은 둘의 만남은 학원가방 덕분임을 드디어 고백합니다.
그리고 공항에서의 찌질함은 버리고 현화의 손을 잡습니다.

ㅎㅎㅎ

ㅋㅋㅋ

보행자 신호로 바뀐 건널목에서 이렇게 둘은...

행복한 꿈을 꾸는 사람은 콧노래를 부른다는 말이 생각나는 마지막 장면(말풍선)입니다.

오존OZON 번역판에 대한 제 감상은 좀 미묘합니다.
개인의 추억도 소중하다지만, 해적판을 산 소비자는 또 다른 가해자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죠.
번역 품질은 전문 영역이 아니라 모르겠으나 슬램덩크의 그것처럼 촵촵 감기는 현지화한 등장인물의 우리말 이름, 원본과 같은 우횡서라 좌우 반전 없는 편집, 그리고 펜선 뭉개짐이나 스크린톤 망점 번짐 없이 인쇄 상태도 비교적 좋습니다.
악역 하나 없이 심리적 갈등만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끌고 오는 것도 능력이지 싶었습니다.
당시 접하기 어려웠던 이국적 분위기와 삶을 B&W 선화에서 유추하는 부수적인 재미도 잊지 못하고요.
저 때 읽지 않았다면 그 나이에 접해야만 느꼈을 그런 고유의 감성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기도 하고, 딱 꼬집어서 표현하기 어렵지만, 마치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 1994) 같은, 말로 표현하기 참 힘든 감정과 이미지 덩어리가 제 안 어딘가에 살아있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원본으로 봐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있습니다.
현지화 과정에서 지워진 내용그림!!!도 볼 수 있습죠.
(더 보여드리고 싶으나 이 포스팅, 부적절한 콘텐츠로 짤릴까 봐. <== 그런데 그 일이 2023년 9월 22일에 일어났습니다!)
자기 주도 어학 공부에 아주 훌륭한 동기부여도 됐습니다.

이렇게 히카루(종범)의 노트에 나오코(현화)가 그린 보노보노의 낙서 옆에 명대사! 'いぢめる?'도 빠지지 않고요.
오존판에서 화이트 칠을 해버린 이 대사, 정발본은 제대로 번역 했겠죠?
만화에서야 어수룩함의 극한만 모아서 묘사되지만, 히카루(종범)의 깔꼼한 필기로 미루어보면, 옷도 잘 입고, 방도 깔끔하니, 나름 준수한 외모에 괜찮은 녀석이라 만화에서는 생략된 행간에 나오코(현화)가 반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완벽하고 자상한 준(준)의 몸에 익은 매너 이면에 병원 원장님인 아빠의 모습을 봤을 수도 있겠습니다.
히카루(종범)가 수도권 대학만 고집한 것도 그렇고, 애초에 만화가 시작하는 고3 때도 이미 여친, 카즈미(윤정)가 있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번역본의 인쇄도 꽤나 깔끔합니다만, 30년도 더 지난 원본도 인쇄상태가 훌륭해서 마치 '알프렠흐트 뒤러 Albrecht Dürer'의 에칭 동판화처럼 선이 날카롭습니다.

요즘의 디지털 편집의 경우 화이트 칠을 좀처럼 보기 힘들죠.
애초에 해외 현지화를 고려한 별도 레이어에 효과음을 넣으니까요.
화이트 칠이 가진 갬성도 고유의 느낌이라지만, 이렇게 원본이 시원하게 보여주는 깔끔함은 보는 눈도 편합니다.

조용팔 작사 송하이 작곡이 아닌겁니다. ㅋ 원래는,
작사 : サンプラザ中野くん
작곡 : Newファンキー末吉
爆風スランプ(BAKUFU SLUMP)의 リゾ・ラバ(Resort Lovers)라는 1989년 7월 19일 발표곡으로, 여기를 클릭/터치하시면 편하게 바로 노래로 이동하는 친절한 블로그를 지향합니다.
노래 부르시는 분, '9준엽 선생님 x MC몽' 사이의 경계 어딘가에 블러리~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카세트의 리스트에 잘려서 반만 보이는 곡은 아마도 米米CLUB의 FUNK FUJIYAMA(1989년 10월 21일 싱글 발매)로 예상합니다만... MV에 반복되는 이미지 때문에 링크는 생략했습니다.
두서없는 사진과 어수선하고 허접한 리뷰가 되었지만, 일찍이 좋은 만화 소개해준 어딘가에 계실 당시 OZON 관계자분, 특히 원작자 '하라 히데노리 原 秀則' 선생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용기 내어 써본 포스팅을 마칩니다.
대한해협을 건너온 AM 주파수를 통해 들었던, 간신히 멜로디만 기억에 남은 노래를 근 30년 만에 찾은 건 지난 2023년 1월 8일이었습니다.
강요는 아니고요 안 하고요 ㅋ, 되찾은 저의 오랜 기억과 추억을 같이 즐겨주는, 이를테면,
'아빠, 내가 왜 이 노랠 흥얼거리지?'
라며 흔쾌히 제 과거를 공유하는 가족들이 고마운 하루입니다.
그나저나 우리 애들, 언제 이 만화책을 보여줄지, 엄마 아빠가 봤던 만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장난스런 상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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